592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65·구속 기소) 전 대통령이 23일 피고인석에 선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74일 만에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서 수의(囚衣) 차림의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오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40년 지기’ 최순실(61·구속 기소)씨와 주 3회 이상 나란히 재판을 받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2일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뇌물 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정식 재판 일자를 23일 오전 10시로 지정했다. 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신 회장은 이날 모두 불출석했다.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으로는 유영하·채명성 변호사와 지난달 새로 합류한 이상철 변호사가 출석했다. 유 변호사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검찰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밝히기에 앞서 공소장 관련 말씀부터 올리겠다”며 10여개 석명(釋明) 요구사항을 쏟아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권한 정지 시점은 탄핵소추사유서가 헌재에 접수된 지난해 12월 9일인데, 공소장에는 헌재가 파면 결정을 내린 올해 3월 10일로 기재돼 있다”며 오류라고 주장했다. 또 “롯데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하는 과정에 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제3자 뇌물수수 공범에서 제외됐느냐”며 “재단 관련 업무를 실제로 수행한 고영태·박헌영씨 등은 왜 의율(擬律·법을 적용함)하지 않았는지, 이들의 신분은 뭔지 밝혀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변호사는 “검찰이 제시한 18개 범죄 사실을 모두 부인한다”며 “다만 수사 기록이 12만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해 구체적 의견은 추후 제시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수사를 직접 담당했던 이원석 특수1부장검사는 “변호인은 현재 기록 검토가 안 된 상태”라며 “변호인 말씀 중에는 나중에 증거 조사로 밝혀질 부분이 섞여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최씨는 변호인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 따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는 A4용지 1장 분량의 서면을 읽으며 “최씨는 오랜 세월 존경하고 따르던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까지 서게 해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며 “함께 재판을 받는 건 살을 에는 고통”이라고 했다. 또 자신과 박 전 대통령을 공동 피고인으로 기소한 검찰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마저 외면해 섭섭하다”고 표현했다.
재판부는 최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최씨와 박 전 대통령 공소사실이 동일하다”며 “서로 겹치는 증인 130여명을 따로 신문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만료 전까지 재판을 마치기 어렵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수감 중인 서울구치소로 옮겨 달라는 최씨 요구에 대해서는 “재판장에게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16일 한 번 더 준비기일을 열고 심리 계획을 확정키로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592억 뇌물 혐의… 박 전 대통령, 23일 법정 선다
입력 2017-05-02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