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시가의 대표적 갈래로 분류된다. 조선 중기 한문문학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 한글로 제작된 사대부들의 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담양에는 이서의 낙지가와 송순의 면앙정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원림(園林) 중 하나인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선비 양산보가 꾸민 별서정원이다. 은사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돼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 숨어 살기 위해 지은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대나무 숲을 지나면 기와지붕을 얹은 흙돌담이 시작되는 곳에 ‘대봉대(待鳳臺)’라는 편액이 걸린 초가지붕 정자가 반갑게 맞는다. 소쇄원을 찾은 귀한 손님이 차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소쇄원의 풍경을 감상하던 곳이다.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을 가진 제월당은 주인을 위한 안채로 학문과 사색을 즐기던 곳이다. 그 옆 양지바른 언덕 위에 철쭉꽃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소쇄원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제월당 마루에 앉아 주변 풍경과 이곳에 흐르는 계곡의 소리를 들으면 시심(詩心)이 절로 솟는다.
제월당 문을 나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광풍각(光風閣)이 고색창연하다. ‘비 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의미의 광풍각은 주인이 소쇄원을 찾은 벗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던 공간. 바로 옆에는 소쇄원을 관통하는 계곡물이 폭포를 만들고 있다.
소쇄원 인근에 식영정(息影亭)이 자리한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 간다는 정자다. 서하 김성원이 1560년 장인이자 스승인 담양부사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 무등산과 광주호가 보이는 성산 자락 끝에 고즈넉하게 그림 같이 올라앉아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에 단층 팔작지붕이며 한쪽 귀퉁이에 방을 두고, 앞면과 옆면을 마루로 깐 것이 특이하다.
광주호의 지류인 자미탄(창계)이 발아래 굽어보인다. 식영정 절벽 아래에는 현재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지만 옛날 자미탄 시냇물이 흘렀다고 한다. 자미탄은 주변에 자미(배롱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얻은 이름이다. 배롱나무꽃이 지천인 강과 언덕 위에 솟아있는 정자는 그 자체로 그림이다. 정자 옆 천년송 한 그루가 호남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듯 꼿꼿하게 용틀임하고 있다.
정철, 임억령, 고경명, 김성원 등 ‘식영정 사선(四仙)’은 성산의 경치좋은 20곳을 선택해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었다. 훗날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됐다. 성산별곡은 식영정과 서하당 등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성산 주변의 풍경과 김성원의 풍류를 예찬하는 가사다.
식영정 경내에는 근래 복원된 서하당과 부용당이 자리한다. ‘송강집’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이 건립됐다. 성산별곡을 썼다고 해서 입구에 성산별곡 시비도 세워져 있다. 신록의 계절을 맞아 초록빛을 발산하는 나뭇잎들이 찌든 마음을 맑게 씻어준다.
식영정과 함께 낙향한 정철이 한을 시가로 승화시킨 명작의 무대가 송강정이다. 정철이 49세 때 지은 정자다. 그는 정적의 탄핵을 받아 대사헌 자리를 물러나 야인이 되자 언덕 위에 초당을 짓고 이름을 죽녹정이라 붙였다. 정자 인근의 들판이 죽녹이었고 들판을 흐르는 강이 죽녹천이었다. 현재 증암천으로 불리고 있는 죽녹천은 송강이라고도 불렸다. 정씨 후손들이 쓰러진 정자를 다시 세우면서 이름을 바꿔 송강정이 됐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 가운데 방이 있는 팔작지붕 구조다. 정면에는 송강정이라는 현판이, 북쪽 옆면에는 죽녹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정자 앞 마당에는 사미인곡 시비가 서 있고 키 큰 소나무가 서 있다.
정철은 이곳에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쓰며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토하고, 권력에로의 복귀를 염원했다. 자연에 대한 찬탄과 고요한 생활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면앙정은 담양군 봉산면 제월봉 아래 언덕에 있다. 송순이 중종 28년(1533) 41세 때 지은 뒤 77세에 의정부 우참찬을 끝으로 공직을 마치고 낙향해 91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유유자적했던 정자다. ‘면앙’은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사심도 없고 꾸밈도 없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추구하는 송순의 심성이 잘 드러난다.
정자는 소박하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흔한 구조다. 마루 가운데에 방 한 칸을 마련하니 자연스레 정면과 좌우 3면에 마루가 남는다. 팔작지붕 처마의 네 귀에 활주를 달았다. 정자 앞은 너른 마당에 제월봉으로 막혔고 탁 트인 경관은 정자의 뒤편에 있다. 가까이는 옥천산 용천산 산줄기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고 발아래 집과 들판, 강이 펼쳐진다. 멀리는 추월산과 무등산 풍광이 한눈에 조망되는 명소다. ‘10년을 경영해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는 송순의 읊조림이 꼭 들어맞는 풍광이다.
정자 앞 마당에는 ‘면앙정가’ 한 구절을 새긴 비가 있고 송순이 정자를 지은 뒤 심었다는 참나무 두 그루가 정자 앞뒤로 서 있다. 면앙정가는 정극인의 ‘상춘곡’과 함께 호남 가사문학의 원류가 된다. 내용 형식 가풍 등에서는 정철의 성산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송순의 나이 87세 때 과거급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회방(回榜) 잔치가 열렸다. 인근의 유명인사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잔치가 끝난 뒤 정철, 임제, 고경명, 이후백 등 4명의 제자가 스승을 손가마에 태우고 언덕길을 내려왔다. 4명의 제자는 후일 조선의 대표적인 시인이 됐다. 송순의 무덤은 정자에서 제월봉 정상 쪽으로 100m 지점에 있다.
여행메모
대통밥·죽순·떡갈비 먹거리 다양… 오는 7일까지 '대나무 축제' 열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소쇄원을 찾아가려면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장성분기점에서 담양고창고속도로로 진입해서 달리다 담양분기점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후 고서분기점에서 다시 호남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창평나들목에서 나가면 가깝다.
대나무와 관련된 먹거리가 많다. 대통에 멥쌀과 찹쌀, 흑미, 검은콩에 대추, 은행, 밤을 넣고 소금으로 간한 물을 부은 뒤 압력솥에서 20∼30분간 쪄 내는 대통밥도 일품이다. 식이섬유, 비타민C가 풍부하고 아삭아삭한 질감과 담백한 맛을 내는 죽순 요리도 좋다.
죽녹원 건너편 '국수의 거리'를 들러볼 만하다. 냇가의 시원한 대나무 평상에서 먹는 국수가 별미다. 남도 특유의 떡갈비도 유명하다.
죽녹원 내 한옥체험장에서 묵을 수 있다. 정자가있는우리한옥, 가경한옥, 가보고싶은한옥 등에서도 한옥숙박을 체험할 수 있다. 호텔로는 담양온천&관광호텔 등이 있다.
오는 7일까지 죽녹원 및 전남도립대 일원에서 '제19회 담양 대나무 축제'가 열리고 있다. '푸른 대숲, 숨 쉬는 자연'이라는 주제 아래 대나무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담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