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나무에서 나온 가지다.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다. 나무가 하나님에게 뿌리내리고 있다면 가지는 하나님을 향해 자랄 것이다. ‘희망 온 에어’(홍성사)를 낸 최충희(62) 사모를 최근 서울 마포구 성지로 양화진책방에서 만났다. 최 사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자양분을 끌어 올려 살며 이웃을 위로해온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진지한 표정과 유쾌한 웃음이 다 잘 어울리는 그녀는 남편 서정곤(67) 목사와 함께 미국 세인트루이스한인장로교회에서 사역했다. 퇴임 후인 지난해 초 34년간의 타국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의 고향 전남 여수로 돌아왔다. 책에는 신앙 가족 교회에 관한 글 30편이 실려 있다.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하트앤서울 라디오에 발표했던 원고다.
첫 글은 골육종(뼈암) 말기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야기. “암 말기 판정을 받고 떠날 준비를 했어요. 유서를 쓰고 옷장을 정리하고…. 이 땅의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제 안에 가장 소중한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였어요.”
다행히 뼈암은 오진이었고 병은 악성 림프종으로 판명 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영혼의 병이 발병했다고 한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저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고 고백했어요. 그러다 굳건한 제 믿음에 도취돼 스스로를 믿음의 용사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믿음 큰 자’라는 신앙적 교만을 발견한 뒤 최 사모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 앞에 이보다 더 큰 죄악이 있겠습니까. 나의 의(義)가 나를 구원하고 있노라 여기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았던 것을 사죄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교만으로 변질된 것을 자각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될까. 드물 것이다.
이 믿음은 어느 나무에서 자란 것일까. “제가 열두 살 되는 해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아버지는 재혼했습니다. 어머니는 이후 하나님을 만났고 제게 믿음의 본이 돼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새 어머니와 화해하셨습니다. ‘내가 자네한테 섭섭하게 한 것 있으면 용서해주기 바라네’라고 하시면서.” ‘어머니의 용서’ 편에 나오는 얘기다.
최 사모는 한때 미워했던 아버지와 새 어머니에게 전도를 했다. 그녀는 새 어머니에게서 ‘충희야 고맙다. 하나님을 아는 행복을 전해 주어서!’라고 편지를 받기도 했다. 사범대를 졸업한 최 사모는 1982년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갔다. 남편은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신학교에 진학했다. 목사 안수를 받고 94년부터 목회를 했다.
“봉제공장 같은 데 다니면서 유학 뒷바라지를 했죠. 남편이 목회자가 된 뒤엔 사모 역할을 했고요.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도 있지만 희생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나님이 세워준 자리에서 늘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 집에서 사람들을 모아 성경공부를 인도했고 사모가 된 뒤에는 교회에서 북클럽을 운영했어요.”
부부가 목회를 시작했을 때 세인트루이스한인장로교회 출석 교인은 50명 안팎에 불과했으나 마칠 때는 600명이 넘는 이 도시 최대 한인교회로 성장했다. 어머니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최 사모는 외동딸 은아(38)씨에게 무엇을 물려주었을까.
“부모도 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미약한 인간이지 않습니까. 시편 1편에 악인의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지만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의 나무와 같다고 하잖아요. 자녀가 하나님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땅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최선입니다. 부모는 하나님 안에서 고민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딸의 편지’ 편에 나오는 교훈이기도 하다. 은아씨는 아버지가 공부했던 신학교에서 상담학을 공부한 뒤 두 아이를 키우며 이 분야에서 활동한다. 최 사모는 얼마 전 미국에 있는 딸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성장하는 것처럼 보여.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최 사모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 모양이다.
그녀의 책을 읽는 이들은 이 답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대지에 뿌리 내리려 애쓰는 사람에게서 믿음의 가지가 뻗어 나가는 걸 보여 주니까.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저자와의 만남-최충희 사모] “말씀은 삶의 자양분 가족이라는 나무 뿌리 깊어졌습니다”
입력 2017-05-04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