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중에서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고전 장르의 하나가 필름 누아르(film noir)다. 그보다 더 오래된 장르가 몹 필름(mob film)이라고도 하는 갱스터 영화다. 둘은 연원과 디테일에서는 다르지만 자주 겹친다. 최근에 나온 영화 한 편도 둘 모두에 해당한다. 벤 애플렉이 주연에 감독까지 겸한 ‘밤에 살다(Live by Night, 2016)’.
1920년대 갱들이 날뛰던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경찰 간부의 아들이었으면서도 암흑가에 투신한 아일랜드계 갱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는 데니스 리헤인의 2012년작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아이야 가라(2007)’에 이어 그가 리헤인의 작품을 원작으로 연출한 두 번째 영화다. 그러나 ‘아이야 가라’와는 딴판으로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했다.
이유가 뭘까? 내가 보기에는 애플렉이 험프리 보가트도, 로버트 미첨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할리우드 황금기 갱스터 영화와 누아르의 주인공으로 명성을 떨친 보가트나 미첨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관객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 역시 이유가 될 것 같다. 리헤인의 원작이 미스터리, 범죄소설의 노벨상이라 할 에드거상 수상작이었음을 감안하면 애플렉의 각색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같은 현대 누아르의 고전(苦戰)은 아쉽다. 미스터리를 본령으로 하는 누아르는 나름대로 매력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대부’가 갱 영화의 중흥을 이끌었던 것처럼 누아르도 걸작이 나와 중흥을 맞기를.
‘밤에 살다’와 흡사한 제목의 영화는 이미 있었다. ‘그들은 밤에 산다(They Live by Night, 1948)’. 명장 니콜라스 레이의 장편 데뷔작인 이 누아르 영화는 수없이 변용돼온 ’도망치는 남과 여‘라는 스토리의 원형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의 직계 조상. 그러고 보면 리헤인이 옛날 영화 제목을 슬쩍 차용, 또는 표절한 셈인데 제목 훔치기는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20> 누아르의 부흥을 기대하며
입력 2017-05-02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