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많은 외국인근로자들의 ‘쉼터’… 외국인 ‘카페교회’ 대구평화교회

입력 2017-05-03 00:06
고경수 목사(왼쪽 네 번째)와 외국인근로자, 이주민여성들이 지난달 23일 대구평화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뒤 교제의 시간을 갖고 있다.
중국인 봉사자가 대표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대구 달성군 현풍면의 건물 2층에 위치한 대구평화교회(고경수 목사)는 아래층 입구에서부터 은은한 커피향으로 진동했다. ‘블레스 유 커피’라는 이름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평일엔 카페이지만 주일엔 예배를 드리는 카페교회였다. 여느 카페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외국인 근로자들만 찾는다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대구평화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12시30분부터 시작되는 예배에는 인근 달성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 이주민여성과 아이들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444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492장) 등 찬송가를 많이 불렀다. 강대상 옆 스크린에는 중국어 베트남어 네팔어로 된 찬송가 가사들이 자막으로 나왔다.

기도의 시간.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온 봉사자들이 각국의 언어로 대표기도를 이어갔다. 고경수 목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묵상의 기도를 드렸다.

고 목사는 ‘아름다운 동행’(눅 24:13∼35)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엔 산업재해로 보상치료를 받아야하지만 그러지 못한 채 협박을 받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낙심과 좌절, 탄식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 동행자가 있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의 인생길에 동행자가 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함으로써 기쁨과 평안을 누리십시오.”

예배를 마친 뒤에는 식탁교제가 이뤄졌다. 나라별로 순번제를 정해 식사를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는데, 이날은 중국공동체에서 덮밥 된장국 쌈 등을 준비했다. 식사를 하는 중에도 외국인근로자들이 계속 방문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블 카심(41)씨가 인사하자 고 목사는 “앞으론 일찍 좀 와서 같이 예배 드리자”며 반갑게 맞았다. 고 목사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친구들은 대부분이 무슬림이라 예배 참석은 안하고 끝날 때쯤 와서 식사를 한다”며 “카심씨는 내가 눈여겨보는 친구”라고 말했다.

카심씨는 최근 고 목사 덕분에 만성신부전증으로 산재승인을 받았다. 간병을 위해 아내와 아들까지 한국에 들어와 시간을 보냈다. “원래 카심씨는 생년월일을 허위로 기재해 위조여권자라고 해서 당장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본인이 의도한 게 아니라 방글라데시 정부의 행정적 실수로 그렇게 된 거죠. 억울한데다 몸까지 아프니 저를 찾아온 겁니다. 일하면서 병이 악화된 거라 산재승인을 신청했는데 3주 전 승인이 났어요. 임시 비자를 받아 체류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한 젊은 중국인 부부가 고 목사에게 “다음주일에 뵙겠다”고 인사한 뒤 교회 문을 나섰다. “지난해 저 친구들이 낳은 3개월 된 아기를 제가 중국에 데리고 갔어요. 미등록(불법체류) 상태이기도 하고, 애를 키우면서 일할 수 없으니 중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아기를 맡기는 거죠.” 고 목사는 이처럼 부모와 자녀가 떨어져 지내는 게 가슴 아파 한때 탁아방도 운영했다. 그러나 비용 등을 감당할 수 없어 3년 만에 1000만원 넘게 빚을 지고 접었다.

대구평화교회엔 사연 없는 이들이 없었다. 산재신청은 물론 체불임금이나 최저임금, 퇴직금도 받아주고 임신한 여성 근로자들을 상담하는 것도 고 목사 몫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평균 10여건의 상담을 한다. “그렇게 오는 분들이 도움을 받고 교회에 정착해 변화가 됩니다. 여기가 선교현장 아닙니까.”

노숙인 사역을 하던 고 목사는 가끔 외국인 근로자들의 부당한 처우를 들어주면서 이들을 위한 사역의 필요성을 느꼈다. 2003년 대구 시내에 이주민선교센터와 대구평화교회를 세웠다. 박순종 윤일규 목사와 공동대표로 지금도 사역하고 있다. 대구평화교회는 어찌 보면 이주민선교센터의 ‘지점’인 셈이다. 멀리 대구 시내까지 이동할 수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3년 전 공단 근처에 ‘찾아가는 교회’를 세운 것이다.

고 목사는 대구평화교회가 현지인 선교사들을 양성하는 모판이 됐으면 하고 바랐다. 실제로 대구평화교회는 국제구호개발기구 기아대책과 협력해 네팔에 크리스, 스리랑카에 아산크 기대봉사단을 2009년과 2013년에 각각 선교사로 파송했다. 내년 파송을 목표로 지금도 한 부부가 선교훈련을 받고 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현지어를 배우고 사역의 열매를 맺으려면 적어도 3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선교사로 잘 훈련 받은 외국인근로자들은 파송 즉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들이 이주민선교에 더 관심을 갖고 지원했으면 합니다.”

대구=글·사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