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골퍼들 강풍에 무릎꿇다

입력 2017-05-01 21:17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의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자연에 완패했다.

‘골프여제’ 박인비(사진)는 1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어빙 라스 콜리나스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LPGA투어 발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최종라운드에서 선두에 2타 뒤진 2위로 시작했다. 타고난 멘탈과 배포, 기량 3박자를 갖춘 박인비가 역전우승을 할 가능성이 높게 예상됐다. 하지만 천하의 박인비도 자연의 심술 앞에 초라하게 무릎꿇었다.

박인비가 8번 홀에서 친 세컨드 샷이 워터해저드에 빠졌다. 10번 홀에서는 샷이 나무에 맞고 갤러리 근처로 떨어졌다. 15번 홀(파4)은 악몽 그 자체였다. 세컨드 샷이 다시 한 번 물에 빠졌다. 벌타를 받고 친 네 번째 샷은 워터해저드 앞에 멈췄다. 하지만 도저히 다음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박인비는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한 뒤 다시 드롭 존으로 왔다. 이 홀에서 8타 만에 홀아웃했다. 주말골퍼들이 양파로 부르는 쿼드러플 보기였다. 결국 이날 하루에만 9오버파(80타)를 치며 역전 우승은커녕 최종합계 3오버파로 공동 13위까지 추락했다.

박인비가 한 라운드에 80타수대를 기록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박인비는 2007년 투어 데뷔 첫 해 웨그먼스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8오버파 80타를 쳤다. 지난해 볼빅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12오버파 84타를 기록하고 기권했다. 당시는 손가락 부상을 안고 출전한 것이었다. 건강한 몸 상태에서는 이번 대회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낸 것이다.

박인비만 이런 게 아니었다. 전날까지 공동 2위를 기록, 깜짝 우승에 도전했던 아마추어 성은정은 10번 홀(파4)에서 섹스튜플 보기(6오버파)를 저지르는 등 15오버파를 써냈다. 포나농 파트룸(태국)이 17번 홀에서 시도한 칩샷은 바람을 타고 홀컵을 간발의 차로 빗겨나간 뒤 워터해저드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LPGA투어 통산 5승의 안젤라 스탠포드(미국)는 하루 만에 무려 18오버파를 치며 주말 골퍼 수준의 89타를 마크했다.

이날 대회 장소의 풍속은 초속 17m로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텍사스의 심술궂은 강풍으로 최종라운드에 진출한 53명 중 51명이 오버파를 기록하는 참사를 빚었다.

최종합계 이븐파 284타로 한국선수 중 최고성적을 낸 ‘슈퍼루키’ 박성현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강풍은 처음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텍사스 바람은 챔피언 퍼트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 각각 5오버파와 3오버파를 친 노무라 하루(일본)와 크리스티 커(미국)는 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로 연장에 돌입했다. 두 선수 모두 강풍 탓에 단판 승부를 내지 못하고 연장 6번째 홀까지 끌고 갔다. 악전고투 속에 한국계인 노무라 하루가 버디로 우승했다. 길고 긴 자연의 훼방을 뚫고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나서야 노무라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박구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