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위암 덕에 ‘조기발견’ 살아난 남자… 췌장암을 이긴 사람들

입력 2017-05-02 00:00 수정 2017-05-03 20:04
췌장암을 이겨내고 10년째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김문구씨(가운데)가 지난달 19일 정기 검진차 찾은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수술을 집도한 췌장암클리닉 외과 박상재 전문의(오른쪽) 주치의인 내과 우상명 전문의와 암 극복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췌장암인데,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하면 다들 놀랍니다. 단골 병원 의사 선생님조차 주변에서 췌장암 생존자를 본 적이 없다며 신기해해요."

경기도 부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문구(60)씨는 30대에 패러글라이딩에 심취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고 건강에 자신 있었다. 그러던 그가 2004년 아직은 젊은 나이에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하게 됐을 때만 해도 이 고비만 넘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8년 위암 추적 검진을 위해 촬영한 복부CT 영상에서 췌장암이 새로 발견됐다. 위암과는 별개로 생긴 암이었다. 다행히 수술하면 진행 경과가 좋은 췌장 부위에 암이 생겼고, 주변 림프절과 장기에 전이가 안 된 2기에 해당됐다.

김씨는 1일 "처음 췌장암이란 얘기를 듣고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다. 아내가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래도 담당의사인 국립암센터 박상재 전문의는 "초기라서 수술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안심시켰다.

"위암 걸린 게 천만다행입니다. CT 안 찍어봤으면 아마 췌장암이 있는 줄도 몰랐거나 늦게 발견했을 거고, 그땐 정말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죠."

김씨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국립암센터에서 곧바로 암 제거 수술을 받았고 이후 6개월간 고통스러운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견뎌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3년 완치 판정을 받아 10년째 암 재발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

매년 한 번씩 꼬박꼬박 정기검진을 받고 결과를 들으러 올 때마다 1년간의 성적표를 받는 기분으로 떨리고 긴장된다고 말한다. 지난달 19일 1년 만에 국립암센터를 찾은 김씨는 "MRI(자기공명영상) 영상에서 '깨끗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만족해했다.

김씨는 암 수술 후 사무실에 헬스기구를 갖다 놓고 하루 2시간씩 운동하는 걸 빼먹지 않는다. 우상명 국립암센터 췌장암클리닉 전문의는 "췌장암은 대부분 치료가 어려운 단계에서 발견되는데, 김씨의 경우 운 좋게 일찍 암을 발견했고 수술 경과도 좋아 생존기간 연장에 도움됐다"고 설명했다.

췌장암을 유명하게 만든 스티브 잡스가 자신과 같은 또래라고 말하는 김씨는 "'췌장암=죽는 병'이라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 우울하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면서 "나 같은 사례가 더 많이 알려져 췌장암뿐 아니라 다른 많은 암 환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면 좋겠다"고 했다.

임유례(64·여·경기도 성남)씨도 2009년 초 췌장암 선고를 받아 췌장 일부를 잘라냈지만 9년간 암을 잘 이겨냈다. 임씨는 어느 날 즐기던 회를 먹고 배가 아프고 설사 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았다가 뜬금없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임씨 또한 "주변에 췌장암으로 죽는 걸 여럿 봤다. 참 힘든 암이란 걸 알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천인 임씨는 거의 매일 전도를 하며 만보 이상 걷기를 실천하고 짜고 매운 음식 안 먹기, 검은콩 등 항암식품 섭취를 생활화하고 있다.

임씨 주치의인 서울아산병원 간담도췌외과 김송철 교수는 "임씨도 수술이 가능한 단계인 2기에 암을 발견했고 수술 이후 주기적인 검진과 건강한 식생활 습관을 이어가는 것이 암 극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췌장암은 5년 후에도 다른 암에 비해 재발이 잦기 때문에 10년 이상 평생 체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5년 생존율 10%, 고약한 암?

췌장암은 암 완치 판정 기준인 '5년 상대 생존율'이 가장 낮은 '고약한 암'이다. 국가암등록통계가 시작된 1993년 이후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쭉 10% 밑을 맴돌다가 최근에야 10.1%(2010∼2014년)를 기록했다. 췌장암에 걸려 5년까지 사는 사람이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서울대병원 외과 장진영 교수는 "췌장암 생존율이 20년째 10% 근처를 맴도는 것은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려운 데다 환자의 70% 이상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인 수술을 하지 못하는 단계(전이 혹은 인근 조직·장기 침범이 심한 상태)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췌장은 뱃속 깊숙한 곳에 위치해 기능이 많이 떨어지더라도 좀처럼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때문에 초기에는 '이런 증상이 있으면 암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나마 췌장암을 의심할 만한 황달이나 체중 감소, 극심한 복통 등 증상이 있을 땐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됐다고 보면 된다.

췌장은 특히 중요 혈관들과 맞닿아 있어 암이 빨리 퍼지고 조금만 진행돼도 수술이 힘들다.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수술이 가능한 경우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수술해도 생존 기간은 평균 18∼20개월로 짧다. 수술이나 항암치료 후 2년 안에 60∼70%에서 재발한다.

장 교수는 "암 진행 단계인 병기(病期)로 따지면 1, 2기는 수술이 가능하고 3, 4기는 수술 대상이 아니다"면서 "수술이 불가능한 단계에선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해도 완치를 기대하기 힘들고 통증 개선 등 증상 완화 치료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1기 췌장암의 경우 수술 후 약 50%, 2기는 20∼30%에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췌장암은 안 걸리는 게 가장 좋지만 걸렸더라도 가급적 초기인 1, 2기에 발견해 수술받고 이후 꾸준한 검진과 암 극복 노력이 뒤따라야 김씨나 임씨처럼 오래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췌장암 진단 후 5년 이상 생존자는 2017년 1월 기준으로 1913명이다. 이 중 654명은 10년 넘게 살고 있다.

소화불량 복통 있으면 CT 검사로 체크

췌장암은 국내 전체 암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14년 기준 2.9%(8위)로 크게 높진 않다. 하지만 국가암검진 덕분으로 대장암 위암 간암 등이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는 데 비해 췌장암은 폐암 등과 함께 오히려 늘고 있다. 2014년 신규 췌장암 환자는 전년보다 403명 늘었다. 노령인구와 흡연, 음주, 서구화된 식생활 증가 등이 새로운 췌장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걸로 분석된다. 건강검진 등을 통해 복부CT나 초음파검사가 많이 이뤄져 발견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흡연은 췌장암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췌장암의 3분의 1이 오랜 흡연에 의한 것이며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췌장암 위험이 약 2배 높다. 국립암센터 우상명 전문의는 "담배를 끊었을 경우 10년 이상 지나야 췌장암에 걸릴 위험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만큼 낮아진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고 소개했다.

만성췌장염을 앓고 있을 경우 췌장암 발생 위험은 약 15배 높아진다. 만성췌장염은 췌장에 염증이 생겨 딱딱하게 굳어지는 병으로, 지나친 음주가 가장 큰 원인이다. 1주일에 3회 이상 술을 마실 경우 췌장암 위험이 최대 1.3배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장진영 교수는 "과도한 음주는 그 자체로 암의 위험 요인이면서 췌장암으로 이어지는 만성췌장염을 유발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당뇨 환자는 2∼10배 높은 췌장암 위험을 안고 있다. 가족 중에 당뇨병 환자가 없는데 중년 이후 당뇨병을 갑자기 진단받았다면 췌장암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검진에서 췌장에 '점액성 낭종(물혹)'이 발견된 경우도 차후 췌장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췌장암의 약 10%는 유전적 원인으로 발생한다. 우상명 전문의는 "직계가족 가운데 50세 이전에 췌장암에 걸린 사람이 하나 이상 있거나 발병 나이와 상관없이 췌장암 환자가 2명 이상 있다면 '가족성 췌장암'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췌장암은 갑자기 체중이 줄고 구역질 같은 애매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 복통이 생기지만 심하지 않은 경우 배의 불편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서울아산병원 김송철 교수는 "이런 통증은 등 쪽으로 퍼지는 방사통 형태를 띠는 특성이 있는 만큼 유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평소 소화불량이나 복부의 불쾌감, 복통 등 막연한 위장 증상이 있을 경우 췌장암이 있지 않을까 한 번쯤 의심하고 복부 초음파내시경이나 CT, MRI 검사 등으로 췌장의 이상 유무를 꼭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