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엔 ‘녹색’ 떼더니 이번엔 ‘창조’ 떼나… 관료사회 우려

입력 2017-05-01 05:02
각 중앙정부부처 기획조정실에는 내부 행정 평가·개선 업무를 담당하는 과장급이 한 명씩 있다. 이들 과장의 직함은 걸핏하면 바뀐다. 가장 최근인 2013년부터는 ‘창조’를 넣은 창조정책담당관이나 창조행정담당관이란 직함을 명함에 새겼다. 참여정부 시절 행정관리담당관, 이명박정부 때는 정책관리담당관 등의 이름으로 있던 자리다. 경제부처 기조실의 한 관계자는 “신정부 출범 때마다 과 명칭이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창조를 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 출범을 열흘 앞둔 30일,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대통령 부재에 따른 국정 공백이 해소된다는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선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시도하는 차별화 때문에 치를 홍역에 대한 우려다.

국가 미래를 위해 마련한 중장기 정책을 실효성 평가도 없이 뜯어고쳤던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이명박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노무현정부 색채를 지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기업 프렌들리’를 강조하며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펼쳤다. 박근혜정부 때도 전 정부와의 차별화가 선결과제였다. 녹색성장 대신 창조경제를 내걸면서 5년 동안 추진했던 중장기 정책은 갈 곳을 잃었다. 5년의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기획재정부 A국장은 “녹색성장 예산이 사라지고 창조경제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국제적으로 선도할 수 있었던 관련 분야의 경쟁력이 위축됐다”고 아쉬워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한 정책도 바람 앞 촛불이다. 평가가 좋은 정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고용노동부 B국장은 “이번 정부에서 시행한 고용디딤돌 사업 등 현장 반응이 괜찮은 정책도 (정권이 교체되면) 바뀌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C국장은 “공공 조직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며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과장급 이상은 한 가지 근심거리가 더 있다. 신정부가 들어서면 감사원을 동원해 과거 시행했던 정책에 대한 책임을 공무원에게 지웠던 기억이 선명해서다. 위에서 시킨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정권이 바뀌면 죄인이 되고 만다. 기재부 D국장은 “창조경제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감사하고 인사에 불이익을 준다는 얘기가 벌써 들린다”며 “사업 자체를 평가하지 않은 채 책임을 물으면 제재를 안 받으려 일 안 하는 공무원만 늘어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장관급 인사에 대한 우려도 제기한다. 경제부처 한 고위관료는 “비상시국인 만큼 조직을 모르는 교수·연구원 등이 장관으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조민영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