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처하며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금융 지원 등을 강화하겠다는 게 공약의 핵심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정부가 중소기업과 혁신 창업기업의 구매자가 되고 마케팅 대행사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또 스타트업 공공부문 조달 참여를 보장하고 창업지원 펀드 등 지원 자금도 확대하기로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혁신형 강소기업’을 육성하겠다며 2022년까지 중소·중견기업 전용 연구·개발(R&D) 예산 10조원으로 늘리기로 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실패 창업인에 대한 재도전 기회 부여, 창업 단계별 맞춤형 금융정책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창업’에 포커스를 두고 ‘혁신 안전망’ 구축, ‘네거티브 규제’, 벤처캐피털 설립 등을 약속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재벌과 대기업에 치중된 시장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거래에 증여세를 강화하고 출자총액제한제를 재도입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공약에 대해 중소기업이 효과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고민, 즉 ‘어떻게’가 없는 정책 남발이라고 지적했다. ‘피터팬 기업’을 만드는 육성책보다 중소기업 성장을 막는 대기업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피터팬 기업이란 중소기업이면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중견기업으로 올라가면 받을 수 없게 돼 일부러 중소기업에 머무르는 경우를 말한다.
중소기업학회장을 역임한 이종욱 서울여대 교수는 30일 “5명의 대선 후보들이 중소기업부를 설치하겠다고 하지만 구체적 공약보다는 과거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각 당 후보의 창업·벤처기업 육성 인프라나 시스템 마련 관련 공약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지원 정책보다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를 막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피터팬 기업들을 양산하는 중소기업 육성책은 차고 넘치는 상황이니 일감 몰아주기, 기술 탈취, 부당 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 불공정 행위를 철저히 감시하는 기능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작정 대기업, 재벌기업을 청산하기보다 중소·중견기업을 대기업으로 키워 더 많은 대기업이 경쟁하는 게 한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무역협회 등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한국과 독일의 중소기업 비중은 각각 99.9%, 99.6%로 양적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질을 따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소기업 내 수출기업 비중은 독일이 11.1%나 되지만 한국은 2.5%로 대부분 내수기업이다. 강소기업인 ‘히든챔피언’ 기업 수도 독일은 1600여개나 되는데 한국은 7개에 불과하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역량 있는 중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데도 정책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알맹이 빠진 中企 육성 대선공약
입력 2017-05-01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