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교과서 정책’… 자습서 값만 올렸다

입력 2017-05-01 05:03

중·고등학교 중간고사 기간인 요즘 학생들의 마음은 무겁다. 내신 대비에 필수인 자습서와 평가문제집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고교생들은 주요 대학들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확대하는 등 내신 비중이 커지면서 중간·기말고사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과목당 거의 10만원이 드는 자습서와 문제집을 사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교 2학년인 이모(16)군은 “신학기에 국어 영어 등 주요 과목 자습서와 평가문제집 7권을 샀더니 10만원이 훌쩍 넘었다”며 “학종 때문에 내신이 중요해져 어쩔 수 없이 자습서와 문제집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안모(51·여)씨는 “학기 초에 과목별로 자습서와 문제집을 사줬는데 한 권에 2만원을 훌쩍 넘어 과목별로 사려니 부담이 컸다”며 한숨을 쉬었다.

자습서는 교과서 내용을 풀어 설명한 책이고, 평가문제집은 말 그대로 문제풀이를 연습할 수 있는 문제집이다. 모두 내신 대비에 필요한 교재들이다.

그러나 교재비가 만만찮다. 출판사 ‘창비’의 고교 1학년 1학기 ‘국어1’ 자습서 가격은 2만5000원이다. 2만3000원인 평가문제집까지 합치면 한 학기에만 4만8000원이 든다. 2학기 교재비까지 포함하면 10만원에 육박한다.

자습서와 평가문제집 가격이 크게 오른 데는 오락가락한 교과서 가격 정책이 한몫했다. 이명박정부는 2009년 검정교과서 가격자율화 정책을 내놨다. 출판사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해 질 높은 교과서를 만들어 교과서 위주의 학습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출판사들은 앞다퉈 고급 종이와 컬러 인쇄를 도입하고 각종 교사용 멀티미디어 자료를 개발했다. 교과서 개발 및 발행 비용은 자연스레 증가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가격자율화 시행 직후인 2012∼2013년 보급된 중·고교 검정교과서 평균가는 6499원으로 치솟았다. 시행 이전 평균가인 3336원 대비 95% 증가한 수준이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자 지난 2014년 박근혜정부는 교과서 가격조정명령을 내렸다. 출판사가 희망한 가격보다 30∼40% 정도 하향 조정토록 했다. 출판사들은 조정가로는 개발비용도 회수하기 어렵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가격조정명령이 적법했다며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출판사는 교과서에 딸린 자습서와 평가문제집에서 생존 전략을 찾았다. 검정교과서 출판사 관계자 A씨는 “학교 측에 교사용 지도서, 멀티미디어 자료 따위를 제공하는 등 무리한 판촉을 해서라도 채택률을 높이려 하고 있다”며 “가격조정명령 이후 교과서 가격이 낮아지면서 자습서나 평가문제집 판매를 통해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학생들이 떠안게 됐다. 정부는 교과서 가격을 낮췄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상 출판사가 보는 손해를 학부모와 학생이 보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습서와 평가문제집 가격은 출판사에서 결정하는 영역이지 교육부가 규제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자습서와 문제집의 공공재적인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채택된 검정교과서를 교육 당국이 전량 구매해 학교에 보급하는 등 일종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게 된 출판사가 자습서나 문제집을 통해 수익을 내려 하고, 이는 학부모와 학생의 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도 “자습서와 문제집은 민간에서 발행하긴 하지만 교과서와 연계돼 있어 공공재적인 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되 교육의 공공적 성격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글=이가현 이상헌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