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의 아픔과 이에 항거한 열정의 도시, 전북 군산. 군산은 일제강점기의 근대문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며, 천혜의 비경들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항구도시나 산업도시로만 알려졌던 군산은 최근 관광도시로 멋지게 탈바꿈했다.
군산은 근대역사를 품고 미래와 현재 과거를 오가는 ‘시간여행’의 명소로 지난 해 관광객 200만 시대를 열었다. 2015년 135만 명 수준이었던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에 군산시는 2017년 ‘전북방문의 해’를 맞아 관광객 300만 명을 목표로 관광 콘텐츠 개발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
군산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군산이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일본풍의 근대유산들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떠나자 군산에는 적지 않은 흔적이 남았다.
이들은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보다 수탈당한 재산을 우리가 되찾았다는 의미로 재해석됐다. 단순히 볼거리 제공을 위한 보존이 아니라 역사적 과오를 잊지 않기 위한 뼈아픈 교훈을 우리는 군산에서 마주할 수 있다.
군산시는 장미동 일대에서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일제 수탈과 항쟁의 역사를 되새기는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근대건축관으로, 옛 일본 제18은행은 근대미술관으로 새단장됐다. 수탈용 쌀 보관 창고였던 대한통운 창고는 장미공연장으로 변했다. 고려 시대 왜군을 무찔렀던 ‘진포대첩’의 현장인 내항 일대는 진포해양테마공원으로 꾸며졌다.
특히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군산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곳은 무역항으로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해 보여주고 있다. 유료 관람객이 2013년 22만여 명에서 3년 전 41만 명, 2년 전 81만 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100만 명을 돌파했다. 문세환 박물관관리과장은 “내방객 중 외지인이 90% 이상”이라며 활짝 웃었다. 신흥동 히로쓰 가옥과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등이 인근에 몰려 있어 봄볕을 즐기며 걸어서 둘러보기도 좋다.
여러 섬들이 빚어낸 천혜의 비경
여러 섬들이 산처럼 모여 천혜의 비경을 이루고 있는 고군산군도 역시 군산의 큰 자랑거리다. 그 중에서도 선유도는 이름처럼 신선들도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놀다 갈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뱃길이 유일한 길이었지만 연륙교가 생기면서 해상과 육로 모두가 고군산을 잇게 됐다. 내년 고군산 연결도로가 전면 개통되면 방문객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군산시는 고군산군도를 ‘서해안의 한려수도’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자동차로 조금만 달리면 새만금방조제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33.9㎞) 방조제인 새만금방조제는 서해안의 명소가 됐다. 군산 도심 속 은파호수공원도 힐링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미식가가 즐겨 찾는 도시 군산
군산의 ‘먹방 투어’도 전국 최고다. 서해안의 풍부한 해산물과 농산물로 형성된 독특한 음식문화가 미식가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해산물 먹거리로는 박대와 간장게장, 아귀찜이 손꼽힌다. 박대는 군산 앞바다에 사는 흔한 생선이지만 살이 두툼하고 맛은 영광굴비 부럽지 않다. 꽃게의 게살이 단단하고 우윳빛이 도는 간장게장도 군산의 자랑거리다. 아귀찜은 전라도 특유의 진한 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은 토속의 맛을 함께 품고 있다.
군산에선 빵집과 짬뽕집 탐방도 필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의 단팥빵과 야채빵은 일품이다. 복성루, 빈해원, 쌍룡반점 등의 중국음식점에서 짬뽕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즐거운 도전이다.
축제와 행사가 끊이지 않는 군산
각종 축제와 행사도 왕성하게 열린다. 오는 31일 새만금 신시광장에서는 ‘제22회 바다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다. 7월엔 ‘제1회 선유8경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9월엔 ‘군산시간여행축제’가 열려 타임머신을 탄 듯이 100여 년 전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볼 수 있다. 이 축제 앞뒤로 8월과 10월 ‘군산야행(夜行)’에 동참해 밤의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다.
김성우 군산시 관광진흥과장은 “11월부턴 금강호에 찾아오는 겨울 진객 철새들의 군무를 보며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며 “군산은 어디를 가나, 어느 철이나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부한 멋진 도시”라고 말했다.
■문동신 군산시장 "근대문화유산은 군산의 아픔이자 큰 자랑거리"
"군산은 아픈 역사의 생채기가 많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문동신(79·사진) 전북 군산시장은 1일 "구도심에 즐비한 근대문화유산은 군산의 아픔이면서 자랑거리"라며 "아픈 역사의 유산을 찾아보면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년째 군산시정을 이끌고 있는 문 시장은 항구도시로만 알려졌던 군산을 관광도시로 탈바꿈 시켰다. 그는 근대역사박물관과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조성하는 등 문화예술 공간을 확충하는데 힘썼다.
"근대역사박물관에만 지난해 100만 명이 넘게 다녀갔습니다. 도시 전체로 따지면 군산은 이미 200만 관광객 시대를 열었습니다." 문 시장은 근대도시의 역사를 회생시켜 개발과 관광이라는 일거양득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그는 "대한민국 경관대상과 아시아 경관대상 등을 수상했다"며 "군산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근대도시로 자리잡았다"고 덧붙였다.
군산시는 올해 말 개통 예정인 고군산군도 연결도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연결도로 중 일부만 개통됐음에도 수십만 명의 방문객 증가 효과를 체험한 시는 도로 주변 관광기반 시설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는 근대문화도시 외에 서해의 관문이라는 점도 적극 내세울 방침이다.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군도의 국제해양관광지, 철새의 낙원 금강하구 등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문 시장은 "오는 5월 31일 바다의 날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며 "멀티관광도시 군산에서 여러분과의 만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군산=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군산시, 역사의 영욕 딛고… 멀티 관광도시로 우뚝
입력 2017-05-01 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