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스파이서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청구 발언의 진의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언젠가 얘기할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사드 비용을 청구할 것인지 말 것인지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 때부터 많이 나온 것이어서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는 투로 말을 보탰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기간에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이 공정한 몫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청구 발언으로 많은 한국 국민이 충격을 받았는데, 그의 대변인은 마치 선거 유세 발언처럼 여기고 얼버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끔찍한 한·미 FTA’ 발언도 마찬가지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요인을 감안할 때 한·미 FTA 재협상에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실제 한국과 재협상하게 되면 그때 얘기하자”고 말을 돌렸다. 로스 장관의 답변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미 행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섰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주무부서인 미 무역대표부(USTR)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내정자가 미 상원 인준을 통과하지 못해 가동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당면과제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일정도 못 잡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과 한·미 FTA 발언은 담당 부처와 조율을 거치지 않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고 지지자를 결집시키기 위해 이런 발언을 했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그의 발언을 일회성으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 실체가 없다고 판단되면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다. 특히 북한을 상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가볍게 받아들여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북한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의 중요한 안보 현안이 된 건 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뤘고, 상원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북한 문제를 브리핑하기도 했다. 실제 브리핑은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등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시급한 안보 현안으로 다루고 있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모두 전례 없는 일들이다. 외교 소식통들은 요즘처럼 미국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최근 한국민을 어이없게 만드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시 주석으로부터 ‘10분간’ 강의를 듣고 난 뒤, ‘사실은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 주석의 말을 별 생각 없이 옮겼다.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인도양에서 열흘간 머물고 있는데도 곧장 동해로 출동할 것처럼 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를 폭격한 것처럼 북한을 선제 타격하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칼빈슨은 북한이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았던 지난 15일 인도네시아 근처에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막말을 자제하지 않고, 메시지가 오락가락하면 그는 영향력을 잃게 된다. 특히 동맹인 한국을 무시하거나 자극하는 언행이 지속되면 한·미동맹의 존립 근거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특파원 코너-전석운]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입력 2017-04-30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