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검증 리포트] 늪에 빠진 중소기업 놔두고 일자리 공약은 ‘뜬구름’

입력 2017-04-28 05:00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은 예방적 근로감독과 불공정 하도급 관행의 감독 강화 등을 통해 불합리한 격차 확대와 미스매치 구조화를 방지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청년고용협의회 소속 공익위원들은 지난 7일 청년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10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첫 번째는 ‘공공기관 일자리 확대’나 ‘취업 지원 강화’가 아니다. 현재 있는 일자리들이 최저임금을 지키고, 사업주가 임금을 떼먹지 않도록 예방하며(예방적 근로감독), 일감을 주면 적절한 대가를 지급하도록 해서(불공정 하도급 관행) 어떤 회사를 다니든지, 비정규직이든지 간에 같은 일을 해도 너무 다른 대접을 받는 문제(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하자는 게 첫 머리에 올라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중구조

현행법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게 일자리 창출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꼽힌 이유는 분명하다. 상당수 일자리가 근로기준법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를 개별 기업이나 사업주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밑바닥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진 한국 경제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발표한 ‘중소기업 위상지표’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은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사업체 수의 99.9%를 차지한다. 전체 근로자의 87.9%가 중소기업에 종사한다. 압도적인 수치를 보이지만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 수준은 1995년 79.4%에서 계속 떨어져 2014년 59.2%까지 내려앉았다.

중소기업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다. 우리 중소기업이 영세화돼 있고, 성장하지 못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중소기업 가운데 소상공인으로 분류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85%를 넘는다. 고영선 고용부 차관은 최근 노동경제학회 토론회에서 ‘저성장시대 일자리정책’ 보고서를 발표하고 “한국은 중소기업 비중 자체도 선진국보다 높은데 그 안에서도 자영업자 비중이 2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4%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다”고 지적했다.

‘2부 리그’ 늪에 빠진 중소기업

여기에다 2014년 기준 임금체납 사업장의 80% 이상이 30인 미만 소기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영세업체가 많다보니 임금체불로 신고해 형사처벌을 받아도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산업별로 봐도 중소기업은 27.3%가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에 몰려 있다. 그나마 고용 안정성이 높은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과 원청·하청 관계로 종속된 구조다. 지난해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의 47.3%가 대기업 납품에 의지하는 하도급 형태로 운영됐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이라는 1부 리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이라는 2부 리그로 분리돼 있다”면서 “2부 리그가 1부 리그로 진입할 수 있게 하거나, 2부 리그 자체의 질이 높아지도록 유도하지 않으면 일자리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역할 중요하다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건 중소기업 지원만으로 안 된다. 오히려 그동안 영세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데 집중됐던 정부 지원이 비정상적인 한계기업이 목숨을 부지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중소기업 정상화를 위해 대기업과의 관계 설정 변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그동안 글로벌 경쟁력을 이유로 대기업의 비용 절감을 간접지원한 측면이 있는데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면서 “대기업의 하도급 단가를 정상화하고, 근로자도 원청·하청업체 격차 해소를 위해 일부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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