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바꾸자는 의견을 냈는데 고쳐지지 않았어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26일 기자에게 털어놓은 얘기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유권자의 선택을 돕고자 선거 공약을 꼼꼼하게 평가해 누가 가장 잘했는지 알리면 불법 보도가 된다. 그런데 후보자 중 토론회 등에서 누가 이미지 관리를 잘했는지, 누가 정책 설명을 가장 잘했는지 평가해 보도하면 문제없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공직선거법 108조 3항에 대한 얘기다.
이 조항은 언론이 후보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교 평가하고 보도할 때 ‘점수 부여 또는 순위나 등급을 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열화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하지만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이는 정책이나 공약에 한정된다. 해당 후보 이미지나 평판을 서열화하는 건 상관없다. 예컨대 토론회에서 어떤 후보가 공약을 잘 설명했는지 직관에 의존해 A∼F로 등급화하는 건 괜찮다.
공약을 꼼꼼하게 보고 누가 가장 잘했는지 보도하면 문제가 된다. 선관위는 본보의 26일자 14면을 문제 삼았다. 해당 보도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100여명으로 공약 검증단을 꾸려 사교육 억제 대책을 평가했다. 교사, 학부모, 교육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평가단은 17개 질문을 만들어 후보에게 보내고 답변을 받았다. 내부 논의를 거쳐 후보별 답변을 A∼F등급으로 평가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해당 보도에 ‘위법보도’란 딱지를 붙이면서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관위는 해당 조항이 불합리하다며 지난해 8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에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선관위는 당시 “언론기관이 정당 후보자의 정책 공약을 비교 평가하는 때에는 이를 서열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권으로부터 묵살당했다.
촉박한 대선 일정 때문에 공약 검증이 어느 대선보다 부실하다. 공약집조차 아직 배포하지 않은 후보도 있다. 검증되지 않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박근혜정부에서 절감했다. 입만 열면 정책 경쟁을 하자는 후보와 정당들. 누가 정책 선거를 막고 있는가.
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
[현장기자] 꼼꼼한 공약평가 불법, 막연한 인상평가 합법… 이상한 선거법
입력 2017-04-28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