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들, 형님 만나서 보약 먹었다

입력 2017-04-27 17:49
한국 U-20(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의 간판 공격수 이승우(오른쪽 두 번째)가 2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와의 연습경기에서 수비를 뚫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신태용 감독은 과연 ‘여우’였다. 그가 이끄는 20세 이하 대표팀(U-20 대표팀)은 지난 2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의 연습경기에서 0대 3으로 완패했다. 경기 후 그는 “힘과 스피드, 패스 타이밍에서 모두 졌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씩 웃으며 이런 말을 잊지 않았다. “그래, 잘 됐다. 너희들은 보약을 먹은 거야.”

‘신태용의 아이들’은 전북전을 통해 상대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몸소 체험했다. 또 끓어오르던 자만심도 억눌렀다.

지난 3월 15일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5월 20일∼6월 11일) 조 추첨식이 끝나자 다들 “한국이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기니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됐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어차피 쉬운 상대는 없었다”며 개의치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노리고 있는 그는 어린 선수들을 어떻게 조련하고 있을까.

신 감독의 국가 대표팀 지도자 경력은 독특하다. 성인 대표팀부터 올림픽 대표팀, U-20 대표팀 순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U-20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직후 그는 놀랐다고 했다. 선수들이 자신의 주문을 소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얘네들 국가대표 맞아?” 하고 그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 선수들이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눈높이를 낮췄다. 그러자 가야 할 방향이 보였다.

당초 신 감독은 4월 20일 선수들을 소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집 시기를 열흘 앞당겼다. 신태용호는 이번에 치른 네 차례의 평가전에서 1승1무2패를 기록했다. 전북전 완패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U-20 대표팀은 전반 8분 코너킥 상황에서 김민재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 2분 만에 고무열에게 추가골을 허용했다. 이른 시각에 두 골을 내준 선수들은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종일관 끌려 다녔다. 또 전북의 강한 압박에 시달리며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치지도 못했다. ‘바르셀로나 듀오’ 백승호와 이승우는 팀 밸런스가 무너지자 당황했다.

U-20 대표팀이 K리그 클래식 최강인 전북을 제압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경기를 치르니 문제점이 확 드러났다. 어린 선수들이 이동국, 김보경, 김진수 등 최정예 선수들이 총출동한 전북에 겁을 먹고 평소의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 감독은 “몇몇 선수들이 전북이라는 이름값에 위축돼 우리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나 잉글랜드를 상대로도 위축될 수 있는데, 이번 경기는 그런 점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U-20 월드컵에서 상대할 팀들은 전북만큼 힘이 강하진 않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플레이를 더 다듬고, 세트피스 실점 상황 등 세밀한 부분을 보완하면 해볼 만하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최강희 전북 감독도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최 감독은 “홈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축구는 11명이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백승호, 이승우 같은 선수들이 해결해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신 감독은 28일 최종 엔트리 21명의 명단을 발표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