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오스트리아 빈의 공공임대주택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빈은 시민 60% 정도가 임대주택에 살 정도로 공공임대주택이 잘 공급된 도시다. 시내 임대주택 세 곳을 방문했는데 하나같이 공용공간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아파트에서 공용공간은 사라진 주제이기 때문이다.
110가구가 산다는 한 임대주택 2층에는 커다란 공용부엌이 있었다. 입주자들이 손님을 맞거나 파티를 할 때 예약제로 이 공용부엌을 이용한다. 조리도구며 테이블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러니 자기 집 부엌이 작아도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수영장과 어린이도서관은 물론 공연장에 카페까지 갖춘 곳도 있었다. 서민들이 사는 임대주택이란 점을 고려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집마다 자기 공간을 조금씩 내놓으면 공동주택에서 수영장이나 도서관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임대주택에서는 특이할 정도로 넓은 복도를 봤다. 서울에서 보는 아파트 복도에 비하면 서너 배쯤 넓다. 건축가는 이 복도를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복도에서 아이들이 친구들과 뛰놀고 어른들은 이웃들과 만난다. 복도가 넓어지면 가구별 전용면적은 좁아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들은 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를 택한 듯했다.
빈의 공동주택에서 공동체성은 단단한 원칙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930년 건축된 칼 마르크스 호프는 빈 공공임대주택의 모델을 제시한 곳인데, 세탁장 유치원 병원 우체국 등 공용시설이 전체 건물 면적의 20%를 차지한다.
이에 비하면 서울의 아파트는 겉만 공동주택이지 속은 단독주택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면 거주자들과 얼굴 마주칠 일도 거의 없다. 거대한 공동주택에서 거리상 가장 밀착한 구조로 거주하지만 실제론 자기만의 집에서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이다.
아파트를 고를 때도 소비자들이 주목하는 건 늘 전용공간이다. 자신이 사는 집의 실내 크기나 인테리어가 문제일 뿐 단지 안에 어떤 커뮤니티 시설이 있고 공용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는 이는 드물다. 또 수많은 아파트가 건축되고 있지만 공동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파트 문화사 연구로 유명한 박철수 교수(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에 따르면 전용공간에만 눈이 먼 소비자들의 행태와 업체의 부추김 때문에 아파트의 옥외공간은 1970,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단지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어버렸다.
이렇게 흘러온 아파트 문화가 우리 사회의 공동체 문화 부재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의 아파트는 공동체성을 경험하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바로 옆에 사는 이웃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체화하는 곳이 된다.
누구나 말하듯이 이웃과 함께 나누고 합치고 공유하며 살아가는 문화와 경험이 우리에겐 심각하게 부족하다.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로 공동체 문화의 부재를 꼽는 이들도 많다. 이웃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빈의 공동임대주택들은 공동주택, 공용공간이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아파트에 공동체성이라는 주제를 다시 불러들이고 공용공간을 늘려나감으로써 각자도생의 문화를 공유와 협력의 문화로 바꿔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공공임대주택에서부터 공용공간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시작해볼 필요가 있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세상만사-김남중] 아파트와 공동체
입력 2017-04-27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