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 거리와 길목에 봄꽃이 활짝 폈다. 똑같은 크기와 길이의 종이꽃들은 국민의 표심을 흔들며 나란히 게시 중이다. 선거벽보 말이다. 그동안 열아홉 번의 대통령 선거 중 후보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익숙한 양당 대결이 아닌, 주요 5당 대결로 치르는 선거판은 예년에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와 부패가 단단히 한몫했다. 그래서 온 국민이 더욱 불꽃을 부라리며 지켜보고 있다.
아노테 통 대통령이 있다. 그는 2003년 이래 지금까지 세 차례 연임에 성공하면서 장기집권 중이다. 키리바시공화국은 인구가 10만명에 불과한 남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영국의 보호령이었다가 1979년 독립했으니 규모로 보나 역사로 보나 약소국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 나라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것이 있다. 지구 날짜변경선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까닭에 해 뜨는 시간만큼은 세계지도정보에 등록한 237국 중 가장 빠르다고 한다.
키리바시공화국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인도양의 몰디브, 남태평양의 투발루와 함께 지금 물에 잠기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33개의 산호초 섬으로 이뤄진 이 나라는 평균 고도가 해발 2미터에 불과하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서 해마다 해수면이 0.3㎝에서 1.2㎝씩 상승하는 까닭에 2050년이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온갖 국제적 선언과 약속에도 불구하고 국가별 할당 탄소가스 배출량이 줄어들지 않으니 기후변화 위기는 적어도 키리바시 사람들에게 당장 강도처럼 덤벼들고 있다. 오죽하면 다달이 보름달이 뜰 때마다 긴장을 반복한다고 한다. 가까워진 달의 작용으로 해수면이 올라가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리바시 관광호텔의 침대 머리맡에는 구명조끼가 비치돼 있다.
통 대통령이 키리바시를 구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은 대통령다운 행동이었다. 그는 출애굽 지도자 모세처럼 ‘존엄한 이주’ 프로그램을 전개 중이다. 국토가 전부 물에 잠길 것에 대비해 살길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기후난민이란 말 대신 피난길조차 ‘존엄’이란 의미를 부여했다. 미래세대 이주지는 2000㎞ 떨어진 이웃나라 피지 북쪽 섬 바누아레부다. 이를 88억원에 구입해 이미 농사를 시작했다.
통 대통령은 시대의 징조를 미리 살피고 국민의 터전을 지키는 일에 앞장선 까닭에 국민적 신뢰를 받게 됐다. 연달아 대통령에 당선된 배경이다. 그는 당선 첫해부터 기후변화 예방 전도사로서 유엔과 세계를 향해 세일즈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치 선지자처럼 세상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징조를 알렸다. ‘선진국이 싼 코끼리 똥을 개발도상국 참새가 어떻게 치울 것인가’란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장미대전이라 불리는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서 이 땅의 봄꽃들은 얼마나 지속될까를 염려한다. 남북관계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연일 진짜 안보와 가짜 안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일자리, 청년실업,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논쟁에서 보듯 국민의 생계는 위협당하고 있다. 고령화, 양육권, 치매 환자, 인구절벽 등 우리의 미래는 갈수록 숨이 턱턱 막힌다. 이대로 가다가는 ‘존엄한 이주’를 고려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당장 침대 곁에 구명조끼를 두고 자야 할 만큼 국민의 생명권은 불안하다. 이젠 “가만히 있어라”는 주문에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와 함께 국민의 신뢰는 맹골수도에 이미 빠져버렸다. 그럼에도 대통령 후보자들은 열쇠수리공처럼 무심해 보인다. 그들은 모든 문을 열 만능키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직하게 호소하지 않는다.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시 74:9) 과연 누가 대한민국의 아노테 통이 될 것인가.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송병구] 국민은 희망 대통령을 뽑는다
입력 2017-04-27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