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 김지민 활동가에게 의사의 길을 묻다

입력 2017-04-30 20:33
김 활동가는 “당장 해외봉사지로 달려가는 것은 어렵지만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나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의사로서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이제 의료봉사는 저에게 살아있는 의미,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파키스탄·나이지리아 등지에서 구호 활동에 참여한 마취과전문의 김지민 활동가(54·사진)의 눈이 빛났다.

김 활동가는 지난 1992년 의사면허 취득 후 30여년간 의사생활을 이어온 중견의사다. 지난 2014년부터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봉사자로 활약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전 세계 60개 이상의 나라에서 분쟁, 전염병, 영양실조, 자연재해로 고통 받거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긴급 구호활동을 하는 국제인도주의 의료구호단체다.

그는 국경없는의사회 봉사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모습을 ‘워커홀릭’이라 칭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하루도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았어요. 병원은 늘 바쁘게 돌아가고 내가 일을 쉬면 다른 동료가 대신 내 몫을 때문에 많은 의사들이 그렇듯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죠.” 의사 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김 활동가는 “죽음은 정해진 대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사생활하면서 많이 느꼈다. 내가 내일 죽으면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며 50세가 되던 해 무작정 병원을 그만뒀다고 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김 활동가는 말한다. 병원을 그만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본 것이 계기가 돼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김 활동가는 주로 산부인과프로젝트의 마취과의료진으로 활동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제3세계 국가에서는 아직도 출산 중 태아·산모 사망이 빈번해 산부인과 포지션의 수요가 높다.

김 활동가는 “한 침대에 산모 3명이 나눠 누울 정도로 환자가 몰렸고, 하루 평균 수술 건수는 10건 안팎으로 많았다. 두 달 동안 매일 진료에 매달리다보니 몸무게도 10㎏이상 빠졌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한국에서 보지 못한 환자 사례도 적지 않았다”며 봉사지에서 겪은 상황을 회상했다. 뒤이어 그는 “정말 힘들었지만 행복하고 보람된 나날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유를 묻자 그는 ‘감사를 깨닫게 됐다’고 답했다. 김 활동가는 “이전에는 내가 못 가진 것에 대한 불평이 많았다. 그런데 봉사를 시작하면서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됐다. 현지 사람들의 해맑고 선한 모습에 동화됐던 것 같다.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감사했고, 어려운 환자가 나타나면 그만큼 공부하면서 또 감사했다. 의사로서 어려운 사람들에 도움이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감사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서울대학교치과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의사로서의 생활은 전과 다를 바 없지만, 봉사자로서 자신이 겪은 제3국가의 열악한 의료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비전이 생겼다고 힘줘 말했다. 김 활동가는 “앞으로도 계속 봉사를 이어갈 것”이라며 “당장 해외봉사지로 달려가는 것은 어렵지만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나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설명회 등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김 활동가는 후배 의사들에게 “의사로서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어려움이 종종 찾아오겠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면 분명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