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보건법’에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된 법률이 5월 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존 정신보건법이 정신병원 입원과 약물 관리에 중점을 뒀다면,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 자기결정권 존중과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취지로 한다.
나는 조현병을 가진 40대 남성이다. 지금도 꾸준히 약을 먹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에 정신병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정신보건법 시행 이전에 정신병원의 병상 수는 2000여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신병원과 요양원을 합쳐 10만명 가까운 정신장애인들이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선진국에서 1970년대부터 우리와 같은 정신장애인들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생활하면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정신병원이 늘어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재산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 환자로 만들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정신보건법의 허점을 악용한 사례도 많다.
강제입원 근거조항인 현행 정신보건법 제24조의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한 박모(60·여)씨의 경우, 경미한 갱년기 우울증을 겪고 있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재산을 노린 자녀 2명과 정신과 전문의 진단에 따라 병원에 강제입원됐다. 헌법재판소는 박씨의 주장에 대해 재판관 9명 만장일치 의견으로 해당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불일치 판결을 내렸다.
정신장애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은 지난 20년간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내 정착과 인권 보호를 요구해왔다. 그동안 의료계는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이라는 인프라를 만들지 않고 내버려두다가 왜 이제 와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입원해 있던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이 법의 취지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정신장애인이 사회적 위험요소이자 격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19세기적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 게다가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정신장애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집단적 공분을 일으키게 한다. 강박적이기까지 한 사회적 청정성에 기반한 사고방식이다.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와 같이 불결한 것은 방어하고 청정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우리와 같은 정신장애인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갖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작은 욕망도 누릴 수 없는가. 무작정 위험하다는 편견을 갖고 병원 안에서만 살도록 하는 것은 사회의 이기적 폭력이다. 나는 약을 먹지만 충분히 공동체에서 잘 살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 정신장애인들이 쏟아져 나올 거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건 의료계가 사회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정신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문제도 더 쉽게 회복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다. 언제까지 가둬두는 것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이지, 물건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고 지지하는 것이 인권(人權)이라면 우리를 가두지 말라. 우리는 병을 갖고 있을 뿐 엄연히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사람이다. 김두호(가명)
[환자에게서 온 편지] “우리를 가두지 말라”
입력 2017-04-30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