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강남 일대에서 공군 훈련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떠는 소동이 벌어졌다. 마침 북한의 추가 도발이 우려되던 인민군 창건기념일이었다. SNS에는 “무슨 일 나는 거냐”고 묻는 글이 이어졌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29일 열리는 에어쇼를 앞두고 사전 비행훈련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야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민의 안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지난해 11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안보 상황을 불안하다고 보는 국민은 54.4%로 안전하다고 보는 이들(16.3%)의 세 배에 달했다. 최고 통수권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 미국의 전력 전진배치 등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위기론은 더 확산된 상황이다. 특히 미국, 일본 정부는 최근 공개적으로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자국민 대피 계획 수립을 밝히는 등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정작 대한민국 국민들은 비상시 대처요령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국민안전처는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을 인쇄물로 만들어 시·도교육청과 시·도청에 두고 있지만 대면배포는 하지 않고 있다. 몇 명이 행동요령을 읽었는지 알기 어려운 구조다. 안전처 관계자는 “비상시 행동요령을 홍보하는데도 한계가 있다”며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피소도 일부러 검색하지 않으면 모르기 쉽다. 안전처는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앱으로 대피시간이 짧은 대피소를 알아두고 이동경로에 대형 유리 등 위험 요인이 있는지 사전 확인하라고 권하고 있다. 지하철역, 대형 건물 지하실 등 전국 1만8000여곳이 대피소로 지정돼 있지만 해당 시설들은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민간 시설들은 아예 공공 대피소 지정을 꺼린다. 안전처 관계자는 “민간 빌딩들은 대피소 재지정 과정에서 자격 미달로 반려되는 걸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나마 안전처가 홈페이지에 제시한 내용도 일반적인 행동요령뿐이어서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얼마나 유용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핵폭발 섬광을 느끼면 폭발 반대 방향으로 엎드리라는 지시도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미지수다.
유사시 소집 장소로 집결해야 하는 예비군도 행동요령엔 깜깜이다. 예비군 훈련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직장인 김모(29)씨는 예비군 7년차인데도 전시 소집 위치와 절차를 모른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지역 근처 요충지를 방어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다. 김씨는 “전쟁이 났을 때 군복 입고 밖으로 나가면 헌병들이 알아서 데려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전처에서 운영하는 국민 재난안전 포털은 일단 동원 대상자(예비군)가 아니면 집이나 대피소 등 안전한 곳에 머무르라고 당부하고 있다. 공격이 진행 중임을 알리는 공습경보가 울리고 대피령이 발령되면 비상식량 등을 준비해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
이런 행동요령은 아는 것보다 숙지하고 익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남궁승필 우석대 군사학과 교수는 “국가안보는 현역 군인, 경찰, 예비군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의 책임과 역할이라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안전처, 교육부가 연계해 학생과 일반인이 함께하는 매뉴얼을 평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안보 전문가는 “정부가 어떻게, 어디로 대피하라는 간단한 안내 사항이라도 제대로 광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비군과 대피소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예비군훈련에 자비와 시간을 들여 참가하는 만큼 보상책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주언 이택현 이형민 기자 eo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커지는 안보 불안, 비행훈련에도 ‘화들짝’… 전시 대처요령은 캄캄
입력 2017-04-2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