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떠난 베이스 연광철 “무대에 서는 게 가장 어울려”

입력 2017-04-27 00:00
올초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한 세계 최정상의 베이스 연광철. 24일 서울 종로구 재능문화센터(JCC)에서 무료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 그는 “교단을 떠나도 재능 있는 후배들에게는 늘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윤성호 기자

세계 최정상의 베이스 연광철(52)은 올초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했다. 2011년 11월 특별채용된 지 5년 만이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다가 국내 음대 교수로 정착하는 다른 성악가들과 달리 그는 50세가 넘은 나이에 연주에 전념하기 위해 교단을 떠났다.

그의 행보는 국내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24일 서울 종로구 재능문화센터(JCC)에서 무료 마스터클래스를 진행 중인 그를 만났다. 그는 27일까지 음원과 영상 심사를 통해 선발된 성악가 18명에게 일대일 레슨을 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오페라는 제 평생의 업이죠. 교수가 되기 위한 방편이 아닙니다. 서울대 교수가 ‘꿈의 직장’이라지만 무대에 서는 게 제 본분에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어요.”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 오페랄리아 콩쿠르 우승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1994∼2004년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 전속 단원으로 활동했다. 1996년부터 ‘바그너의 성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단골로 출연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 세계 명문 오페라극장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하지만 서울대 교수가 되면서 캐스팅 제안을 거절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페라극장들이 나를 찾지 않게 될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어요. 일이 줄어 돈을 많이 못 벌게 되더라도 무대는 내게 가장 어울리는 곳이니까요. 해외에서 나이든 성악가들이 작은 역할이라도 출연하는 것을 보면 감동적이더라구요. 저도 나이의 한계를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비록 교단을 떠났지만 그가 후배들에 대한 가르침까지 그만둔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성악가들의 멘토 역할을 해왔다. 한국 테너로는 처음 바이로이트 무대에 섰던 김석철은 “연 선생님이 오디션을 앞두고 세세히 가르쳐주신 덕분에 합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르치는 것을 크게 좋아하진 않지만 성악가로서 재능과 배울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조언 해주고 싶어요. 이런 후배들은 조금만 바꾸면 확실히 좋아지는 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마스터클래스도 꾸준히 열고 싶어요.”

그가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가사 전달이다. 한국 성악가들은 전통적으로 성량이나 음색을 중시하지만 그는 명료한 발음과 정서의 표현을 주문한다. 바로 이런 점이 그를 세계 오페라계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오페라를 전쟁이라고 했을 때 내 무기는 노래뿐입니다. 아시아 출신으로 키(170㎝)도 크지 않고 잘 생기지 않은 내가 해외에서 노래 외에 싸울 수단은 없으니까요. 노래를 제대로 부르려면 언어와 표현력 연마는 물론 작품과 관련한 서구 문화의 이해에도 신경 쓸 수밖에 없었죠.”

그는 한국 오페라계의 발전에 대해서도 고언을 했다. 특히 국립오페라단이 하루빨리 국제적 수준의 제작 및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4년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의 유력 후보로 거명됐던 그는 ‘시스템 부재’를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한국은 오페라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많아요. 게다가 완성도 낮은 작품도 적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관객을 오페라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듭니다. 전용극장, 전속합창단 없이 운영되는 국립오페라단 문제도 안타깝습니다.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을 모델로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2∼3년 정도 미리 계획을 짤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오페라의 미래는 너무 어둡습니다.”

그는 5월초 한국을 떠난다. 도밍고의 오스트리아 빈 데뷔 50주년 갈라 콘서트와 프랑스 파리 국립오페라 ‘리골레토’ 등의 무대가 내년까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오는 11월 피아니스트 김선욱과의 가곡 연주회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