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도발 대신 저강도 화력훈련… 전술적 후퇴?

입력 2017-04-25 18:18 수정 2017-04-25 21:42
북한이 25일 인민군 창건 85주년 기념일을 맞아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장사정포 등 300∼400문을 동원해 대규모 화력훈련을 벌였다. 사진은 북한 대외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이 지난해 4월 공개한 북한군 방사포 발사 장면. 뉴시스
북한이 인민군 창건 85주년인 25일 대규모 포병 화력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의 압박에 맞대응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김일성 주석 105주년 생일(15일)에 이어 고강도 도발은 자제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례 없는 고강도 압박에 ‘전술적 후퇴’를 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대규모 화력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북한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훈련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참관 하에 장사정포를 비롯한 300∼400문의 포병 장비가 대거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최전방 지역에 배치된 장사정포는 수도권 대부분 지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이번 훈련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압박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실시된 것을 감안할 때 무력시위의 성격이 짙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인민군 창건일에 맞춰 6차 핵실험을 비롯한 고강도 도발을 할 것으로 보고 군사·외교적 압박을 지속해 왔다. 특히 전통적 우방인 중국은 관영 매체를 총동원해 ‘원유공급 중단’ ‘북한 핵시설 타격 용인’을 비롯한 전례 없는 수준으로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은 지난해 3월, 12월 같은 지역에서 대규모 포병 훈련을 실시한 뒤 관영매체들을 통해 공개한 바 있다. 두 훈련 모두 유엔 안보리가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2270·2321호)을 채택한 후 얼마 안 돼 실시됐다.

하지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대신 재래식 화력훈련으로 수위를 낮추면서 ‘강 대 강’ 맞대결을 피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적으로 기대고 있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압박한 게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체제연구실장은 “미국과 중국의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전술적 후퇴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이 보내는 메시지에 북한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일성 주석 생일과 인민군 창건일에 한껏 고조된 긴장이 이대로 잦아들 경우 대화 무드가 조성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이후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미국이 중국을 북한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삼은 만큼 중국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등 중재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음달 한국의 대선이 마무리된 후 북·미 간 ‘1.5트랙(반민반관)’ 등의 대화 시도가 나올 수도 있다.

유엔 안보리 북핵 관련 회의(28일) 등 변수가 있는 만큼 다음 달 초까지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도 있다. 북한이 중국과 미국의 동시 압박이 느슨해진 틈을 노려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남아 있다. 중국이 고강도 압박에 동참하고 있지만 추후 해법에서 제재를 앞세우는 미국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현길 기자,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