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중에 ‘하나님’이란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이 유대민족을 구한다. ‘부림절’의 유래가 된 에스더서를 가리킨다. 부림(Purim)이란 ‘제비’ ‘운명’을 뜻한다. 부림절은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 하만의 음모에 맞서 민족적 구원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에 9:31) 때문에 탈무드시대 랍비들은 에스더서를 모세오경과 함께 구약성서에서 절대 폐기될 수 없는 책으로 평가했다.
저자는 이 같은 기존의 에스더서 해석처럼 하나님의 기적과 우연만으로는 에스더서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당시 페르시아에 끌려간 유대인들의 구원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에 의해 기획됐으며, 이는 일반 정치원리에 대한 그들의 대담하고도 치밀한 계획에 따라 도출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스더 6장 1절의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라는 구절에 대해 저자는 “우연이 아니라 에스더의 계산된 정치적 전략이며, 그가 암살미수 사건의 기록물을 열람한 계기였다”고 평가한다. 즉 질투를 유발하고 하만의 충성심을 의심하도록 에스더가 하만을 왕과 함께 잔치에 두 번이나 초대했으며, 에스더와 하만 사이에 무엇인가 있다고 오해한 아하수에로 왕은 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밤에 잠을 이룰 수 없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이 개입해 일어난 기적이라고 알고 있는 사건의 본질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구상에서 비롯됐음을 대담하게 제시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정치에 들인 노력을 통해 이룩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도 유대인들이 에스더서를 성경에 포함시킨 이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유대인으로서 유대-기독교 분야의 연구에 천착해왔다. 책은 저자의 3부작 중 하나로 전작인 ‘구약성서로 철학하기’의 연속선에 있다. 첫 책도 그랬지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에스더가 하만을 왕과 함께 잔치에 두 번 초대한 까닭은
입력 2017-04-27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