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진보진영 발명품 ‘단일화’ 과연 보수진영서 먹힐까
입력 2017-04-26 05:01
대선 후보 단일화는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13대 대선 이후 대한민국 정치사의 ‘대선 공식’이 됐다. 과거 6번의 대선에서는 야권이 단일화 논의를 주도했지만, 이번 대선은 중도·보수 진영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대선 전 후보 단일화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2002년 16대 대선에서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15대 대선 1년 전인 1996년 총선에서 79석이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대권가도에 위기감을 느낀 DJ는 충청의 맹주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에게 국무총리와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손을 내밀었다. DJP 연합 성사로 DJ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39만557표 차로 제치고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표가 대선을 25일을 앞둔 시점에 극적으로 단일화에 성공했다. 정 전 대표가 대선 전날 밤 지지를 철회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승리를 거뒀다. 대선 재수에 나섰던 이회창 후보와 노 전 대통령의 표차는 57만980표에 불과했다.
2007년 치러진 17대 대선에서도 야권 후보 중심의 단일화 논의가 있었다.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는 단일화 논의를 진행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워낙 큰 탓이다. 정 후보는 531만7708표 차이로 완패했다.
2012년 18대 대선은 야권 후보 단일화 성사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첫 사례다. 당시 돌풍을 일으키며 야권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는 진통 끝에 대선 27일 전 단일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안 후보가 전격 사퇴하는 형식으로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야권이 주장한 ‘아름다운 단일화’를 연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문 후보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3.6% 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이후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대선 패배의 책임과 단일화 후 지원 여부 등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다 결국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범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단일화 논의에 대해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성사돼도 ‘역(逆)시너지’만 유발할 것”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대선 이후 정치적 입지를 확보해야 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단일화는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실익도 없기 때문에 단일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도 단일화에 따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25일 “현재의 단일화 논의는 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몸부림 연대’에 불과하다”며 “안 후보가 보수 진영에 손 내미는 제스처만 취해도 호남 지지율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최승욱 정건희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