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을 설정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나눠볼 수 있다. 알람을 보험처럼 여기는 사람들과 화재경보기처럼 여기는 사람. 보험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설정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에서 깬다. 생체리듬 때문일 수도 있고 긴장감 때문일 수도 있다. 화재경보기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그런 것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매일 밤 알람 설정을 확인하고 자는데도 아침이 되면 방심한 상태에서 알람 소리를 듣게 된다. 이들에게 알람은 언제 울릴지 알 수 없는 것이며, 울리기 전에는 알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고 있다. 화재경보기가 그렇듯이 말이다.
나는 화재경보기 쪽이다. 내 알람은 휴대전화 속에 스무 개나 맞춰져 있는데, 첫 알람은 5시57분에 울린다. 두 번째는 5시59분, 알람과 알람 사이에도 잠이 스타카토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정확히 내가 어느 시점에서 깼는지를 계산하기 어렵다. 잠에서 깨지만 2분 후에 다음 알람이 울릴 것을 믿으며 또 자는 식이니까. 보통 열 번째 알람이 울리기 전에는 완전히 깨게 된다. “마지막 알람은 8시로 되어 있지만 거기까지 갈 일은 거의 없지.” 친한 동생이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 그거 강박 아니에요?” 하면서. 그러나 나는 알람이 잠에서 빠져나오는 길목에 세워둔 가로등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좀 더 촘촘해질 필요가 있다. 곧 서른 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스무 개의 알람이 하지 못할 일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삼중 모닝시스템을 추구한다. 1단계가 스무 개의 알람이라면, 2단계는 남편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내일은 진짜! 지구가 멸망해도 꼭 깨워야 해”라고 강조하는 것. 3단계는 마인드컨트롤. 다음날 내가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되새김한다. 그러다보면 2단계와 3단계가 뒤섞이며 오류를 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일 칼럼 맞춰놨어, 알람 쓰려고”와 같은것인데, 그 말은 막 잠을 청하려던 두 사람을 낄낄거리게 만들 만큼 충분히 요상하다. 알람을 쓰려고 칼럼을 맞춰두다니. 칼럼과 알람-나름대로 라임은 맞는 것 같은 밤을 지나, 아침까지 무사히 왔다.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삼중 모닝시스템
입력 2017-04-25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