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출발해 서쪽으로 2시간여를 차로 달렸다. 마하데비베시 마을에 차를 세워두고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4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달리기 힘들 정도로 울퉁불퉁한데다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이 길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국민일보와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함께하는 ‘회복’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아대책 아동개발프로그램(CDP·Child Development Program) 현장인 랄리구라스 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김수완(청주중앙순복음교회) 고후남(기아대책 부문장) 박재면(네팔 기대봉사단) 목사 등이 동행했다. 방문단은 모두 연두색 기아대책 조끼를 입었다.
한 마을을 지나가는데 60세는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앞장서 걷던 김 목사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들은 학교에 안 보내 주나요.”
박 목사는 “기아대책 조끼 입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주니까 하는 이야기”라며 “동네 사람들이 처음에는 우리를 경계하더니 지금은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하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30여분을 더 걸어 산중턱에 있는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건물은 두 채였다. 일행이 도착하자 학생 80여명이 나와 환영하며 꽃다발을 목에 걸어줬다. 아이들 표정은 밝았고 경계하는 눈빛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교실도 번듯했다. 8개 교실 안에는 걸상이 붙어있는 철제 책상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기아대책은 2010년부터 이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은 학교 인근 땅을 사서 건물 한 채를 지었다. 아이들 학비, 급식비, 비타민 등도 제공하고 있다. 2014년엔 이전부터 있던 건물을 재건축했다. 기아대책과 협력하기 전에는 교실 2칸에 창고가 전부였다.
낭떠러지인 학교 뒤편엔 축대를 쌓고 철망으로 안전시설을 했다. 물탱크를 설치하고 화장실도 개선했다. 학생 수가 50명에서 85명으로, 2개 학년에서 8개 학년으로 늘었다. 네팔은 초등 5년, 중등 2년, 고등 3년 과정이 있다. 학교 운영위원장 저무나 어리얼(35)씨는 “기아대책 덕분에 시설도 좋아지고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감사해 했다.
기아대책은 후원자와 아동을 일대일로 결연한 후 지역교회, 지역 리더, 가정과 연계해 아이의 교육을 지원한다. 이를 VOC(Vision Of Community·공동체의 비전)라 부른다. 현재 이 학교 학생들을 포함해 지역 아이들 480여명이 지원을 받고 있다. 김 목사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기아대책 사역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튿날인 19일에는 기아대책 아동개발프로그램 시행 예정지를 방문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자동차로 6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발딸 지역이었다. 해발 2000m인 산을 2개 넘었다. 중간에 4륜구동 자동차로 갈아타고 50여분을 더 달렸다. 김 목사는 “어떻게 이런 곳까지 찾아내 아이들을 도울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감탄했다.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 곳은 발딸교회(빌바둘 목사)였다. 교회 안에는 아이들 150여명과 성인 5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아대책 아동개발사역팀이 온다고 하자 인근 7개 교회 성도들이 환영하기 위해 모였다고 했다.
기아대책은 이 지역에 아동개발프로그램을 적용하기 위해 지역특성과 지원대상아동을 조사하고 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10세 쌍둥이 람과 럭추만도 지원 대상에 올라있다. 둘은 나이 많은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아빠는 어려서 죽었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 학교 출석은 제멋대로였고 학용품도 없었다. 교복이 없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뿐이었다.
이곳에 아동개발프로그램이 적용되면 이들 쌍둥이는 물론이고 조부모도 교육 혜택을 받게 된다. 아이들 교육의 필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조부모에게도 글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교육에 필요한 학용품 교복 간식 등도 지원한다.
김 목사는 “이곳에 교회가 있다는 게 가장 큰 은혜”라고 말했다. 그는 “어제 방문한 마하데비베시 아동개발사업의 거점이 학교였다면 이곳에선 교회가 중심이 되면 좋겠다”며 “청주중앙순복음교회가 이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발딸 아이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봤다”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아이들이 놀랍게 변화되면 믿지 않는 이들도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네팔 아동개발 프로그램은
네팔(지도)은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 산맥 남쪽에 위치한 국가다. 수도인 카트만두가 해발 1300m에 위치하고 있는 등 도시 대부분이 산악지대에 있다. 지리적 특성상 물류 문제 해결이 중요한 과제다. 건축자재를 옮기려면 한라산(해발 1950m)과 맞먹는 높이의 산을 굽이굽이 몇 개씩 넘어야 한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네팔 중서부에 있는 발딸 지역까지 직선거리는 60㎞였는데 실제 주행거리는 120㎞였다. 차로 갔는데도 6시간이 걸렸다. 시간 당 겨우 20㎞를 간 셈이다. 길이 굽은 데다 대부분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이다.
네팔은 힌두교 국가다. 힌두교가 87%, 불교가 8%, 이슬람교가 4%이며 기독교는 1.5%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 기아대책 이남진 간사는 "힌두교인들은 윤회를 믿어 지금 삶이 어려워도 다음 생을 기약하며 열심히 일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며 "험한 지형과 종교성 두 가지 때문에 네팔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아대책에 따르면 네팔은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12억 달러로 세계 104위다.
기아대책은 2002년부터 이곳의 아이들을 후원하며 아동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5개 CDP(아동개발사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후원자와 1대1 결연을 한 아동은 2000여명이다. 다음 달 발딸지역에 여섯 번째 CDP센터를 오픈한다. 기아대책의 아동개발사업에선 VOC(Vision of Community·공동체의 비전)가 핵심이다. 후원금을 후원아동에게 직접 지급하는 대신 지역 교회, 지역 리더, 가정이라는 세 공동체를 지원해 아이가 교육의 혜택을 받도록 한다.
고후남 기아대책 부문장은 "건강한 사회가 형성되려면 이 세 공동체가 건강해야 한다"며 "이 같은 공동체 비전을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게 기아대책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카트만두(네팔)=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해발 2000m 산속 아이들에게 ‘공동체의 희망’ 선물
입력 2017-04-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