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이 홈페이지에서 살인범죄의 처벌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이는 목적은 현재 처벌수준이 적정한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등을 파악해 검찰 사건처리기준의 설정에 참고하려는 것이다.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살인범죄의 선고형량이 낮다는 문제 제기는 검찰 안팎에서 계속돼 왔다. 5% 수준을 꾸준히 상회하는 살인범죄 재범률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국민일보는 대검 공판송무부에 살인범죄 재범 현황, 해외와의 유사행위 처벌사례 비교 등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24일 이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살인범죄 재범자는 2006년 이후 최근 10년간 53∼80명으로 조사됐다. 재범률은 4.8∼7.0%로 드러났다. 대검이 집계한 살인 기·미수 범죄사범의 숫자가 1000명 안팎임을 고려하면 매년 50명가량이 살인 재범자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다.
이 같은 이들 가운데 다수는 이미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만기출소나 가석방으로 사회에 복귀해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대검이 파악한 사례 중에는 2차례 살인을 저질렀지만 결국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 A씨는 1985년 살인으로 징역 4년의 처벌을 받았는데, 이후 2012년 공사 현장 일당이 16만원인지 15만5000원인지를 두고 다투다 고용주를 살해했다. 재판부는 징역 12년형을 선고하며 “술에 취한 A씨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헌법이 보장하는 최상위 가치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사실을 살인범죄의 처리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크다. 대검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살인범죄 피고인 중 종신형을 선고받는 비중이 2010∼2015년 19.1∼26.0%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비중은 0.9∼3.5%였다.
유사 범행의 향후 처벌을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양형이 위축돼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시카고에서 56세 어머니가 뇌졸중을 앓는 28세 딸과 동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하다 결과적으로 딸만 숨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어머니는 자신이 2차례나 암 치료를 하느라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딸이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함께 약물을 과다복용했다. 이 어머니는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78세 남편이 치매 증상을 앓는 73세 부인의 병간호를 하다 부인을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병간호에 지친 와중에 부인으로부터 폭언을 듣고 순간적으로 격분,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었다. 이 남편에게는 징역 3년형이 선고됐다.
법조계에서는 살인범죄가 양형기준에서 성범죄보다 낮게 설정된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가중적 형태의 특수강간치상의 경우 보통의 살인 행위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주거침입 등 강간과 특수강간·치상의 가중영역 형량범위는 12∼16년이다. 이는 보통 동기 살인(10∼16년)보다 무거운 형량이다.
법원의 양형뿐 아니라 검찰의 구형에 있어서도 법정 최고형이나 무기징역의 제시는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간다는 진단이 나온다. 살인범죄에 대한 엄단, 중대 살인범죄자에 대한 영구격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재범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대검의 대국민 설문조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실시되고 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기획] 살인죄 기본형량 10∼16년… 성범죄보다 가볍나
입력 2017-04-25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