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신고 하루 100건… 한국서 가장 바쁜 홍익지구대 가보니

입력 2017-04-25 05:00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에서 한 여성이 술에 취해 토악질을 하고 있다. 친구로 보이는 이들이 등을 두드리며 속을 달래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시각 한 여성 취객이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홍익지구대로 들어서는 모습. 홍익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주말에도 유흥가에서 접수된 신고를 처리하고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밤새 거리를 지켰다. 이현우 기자

“왱∼” 하는 순찰차 사이렌 소리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바쁜 걸음으로 들어선 경찰들이 ‘음어’(경찰이 보안을 위해 사용하는 암호)를 내뱉고 상황을 전한 뒤 다시 서둘러 출동했다. 한 경찰은 “미적거리다가는 연이어 사건이 밀린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한다”며 다급해했다.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 강승묵 경위는 22일 0시50분쯤 순찰을 돌고 지구대로 돌아왔다. “잘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라고 팀장대리에게 말하고선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받았다. 강 경위가 “취객이 화를 많이 내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하자마자 지구대 한편에서 “강 경위 또 나가봐야겠다”고 했다. 강 경위는 마시던 물을 입에 털어넣고 잰걸음으로 지구대를 나섰다.

젊음이 넘실대며 새로운 유행과 놀이문화가 창조되는 곳. 그런 젊음 발산의 부산물로 112 신고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11길 홍익지구대에서 화려한 홍대 앞 문화의 뒤안길을 들여다봤다.

주말이 막 시작된 금요일 저녁인 지난 21일 오후 9시. 지구대가 위치한 홍대 주변은 20, 30대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홍대 앞은 물론 최근엔 망원동 등 인근 상권도 팽창하면서 서울에서도 가장 많은 젊은이가 몰려드는 동네다.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홍익지구대도 말 그대로 밤낮없이 돌아간다. 다른 지구대보다 배로 많은 경찰 인력과 순찰차가 이 지역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이 지구대에 접수된 112 신고는 3만3293건. 전국 지구대·파출소 가운데 가장 많았다. 하루 평균 100건 가까운 신고가 쏟아진다. 밤새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거나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겠다는 하소연부터 성범죄 신고까지 들어온다. 해가 뜰 무렵에는 지구대 벤치에 ‘뻗은’ 취객을 깨워 집으로 돌려보내고 바닥에 쏟아진 토사물을 치워야 한다.

이날 밤 난동을 피우던 래퍼 정상수(33)씨를 테이저건으로 쏴서 체포한 곳도 홍익지구대다. “옆 남성들이 자꾸 쳐다본다며 술집에서 의자를 던지고 난동을 피우다가 잡혀왔다”고 경찰은 귀띔했다. 정씨는 지구대에 끌려와서도 분이 덜 풀린 듯 고개를 숙이고 씩씩거렸다. 그는 다시 순찰차에 태워져 마포경찰서로 넘겨졌다. 112 신고가 접수되는 범위도 훨씬 넓어졌다. 지하철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홍익대 앞까지 몰려있던 상권이 합정역, 상수역으로 퍼지더니 요즘엔 망원역 ‘망리단길’과 ‘연트럴파크’라고 불리는 연남동 공원까지 더해졌다.

손병철 홍익지구대장은 “망리단길과 연남동공원은 홍익지구대 관할에선 벗어나 있지만 이 지역에서 술을 먹고 관할로 넘어온 이들이 소동을 일으킬 때가 많다”며 “이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신고가 들어오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의 가장 큰 업무는 홍대 인근을 순찰하며 욕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취객을 달래는 일이다. 자정이 넘은 홍대앞거리에서 강 경위가 20대 취객을 어르고 있었다. 술에 취한 남성은 “친구끼리 술 마시다 가볍게 싸운 건데 왜 나를 범죄자 취급하냐”고 소리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 경위는 “알겠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며 다독였다. 돌려보내기까지 30분 넘게 걸렸다. 강 경위는 “이렇게 취한 사람은 자극하지 말고 달래야 한다”고 했다.

날이 밝아도 업무는 줄지 않는다. 이젠 잠에서 깬 악성 민원인들의 신고가 이어질 시간이다. 22일 오전 8시 20대 남성이 대뜸 지구대로 들어와 소리쳤다. “경찰이 나를 괴롭힌다. 테이저건으로 나를 지지기도 했다.” 이 남성의 부친을 불러 병원으로 데려가도록 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경찰 관계자는 “보호자가 올 때까지 심신 미약자들을 지켜보고 있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지구대는 당직 근무하는 경찰들만으로도 꽉 찬다. 경찰 관계자는 “홍익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모두 70여명이고 19명씩 한 팀을 이뤄 4팀이 교대근무를 한다”며 “금요일처럼 바쁜 날은 자원 근무자까지 더해져 당직 근무자만 26명까지 늘어난다”고 했다. 순찰차도 7대로 2∼3대에 불과한 다른 지구대보다 배로 많다.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시작되는 24일 새벽. 지구대원들이 망리단길 상권과 맞닿아 있는 합정역을 순찰했다. ‘여성안심귀가길’이라고 쓰인 바닥에 한 남성이 술에 취해 주저앉아 졸고 있었다. 경찰이 흔들어 깨우자 비틀거리며 일어나 어디론가 향했다. 경찰 관계자는 “망리단길이 인기를 끌면서 주변 합정역에도 소란을 일으키는 취객이 늘었다”며 “전과 달리 합정역 주변도 평소보다 긴장하고 돌아봐야 할 장소가 됐다”고 했다.

날이 밝기도 전부터 출근을 서두르는 차들이 도로로 나왔다. 홍익지구대도 다시 한 주를 맞았다.

오주환 이현우 기자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