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으로만 취급받아왔던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가 성장을 거듭하며 빙판 위에 놀라운 기적을 써나가고 있다.
세계랭킹 23위인 한국은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남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2부 리그) 대회에서 한수 위로 평가받는 폴란드(20위)와 카자흐스탄(16위)을 연달아 격파하며 1부 리그로의 승격 가능성을 높였다. ‘키예프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대표팀의 돌풍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4일(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팰리스 오브 스포츠 아이스링크.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 카자흐스탄을 5대 2로 꺾는 파란을 연출했다. 그동안 한국은 카자스흐탄과의 역대 전적에서 12전 전패로 완벽한 열세를 보였다. 지난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0대 4로 완패했다. 카자흐스탄은 지난해 IIHF 월드챔피언십(1부리그)에서 강등된 팀이다. 2군을 보낸 삿포로 아시안게임과 달리 이번 대회에서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의 귀화선수들을 가용해 최상의 전력을 꾸렸다.
결국 한국은 불과 두 달 만에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전날 폴란드에 이어 카자흐스탄까지 누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며 “수비수 알렉스 플란트(안양 한라)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줬다”고 기뻐했다. 지난 14일 특별 귀화로 한국 국적을 얻은 플란트는 2골 1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백 감독은 IIHF와의 공식 인터뷰에서 “카자흐스탄과 같은 강팀과 경기를 치를수록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2014년 8월 NHL 출신의 백 감독과 박용수 코치에게 지휘봉을 맡긴 뒤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국내 선수들을 해외에 내보내 실전경험을 쌓게 했다. 골리 맷 달튼(안양 한라)을 비롯해 귀화선수들을 중심으로 전력을 구축하면서 토종 선수들도 덩달아 실력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34년 만에 한일전 승리를 장식하는 등 세계무대에서 격차를 좁혀 왔다.
IIHF도 한국의 성장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IIHF는 이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이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내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전했다.
한국은 승점 6점을 얻어 25일 0시 현재 단독 선두다. 지난해 세운 대회 역대 최고성적(승점 7·2승 1연장패(승점 1점) 2패)도 갈아치울 기세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과 폴란드, 카자흐스탄, 헝가리(19위), 오스트리아(17위), 우크라이나(22위) 등 총 6개국이 참가했다. 1·2위 팀은 월드챔피언십(1부리그)으로 승격하고, 최하위 팀은 디비전 1 그룹 B(3부리그)로 강등된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1부리그 승격을 위해선 승점이 최소 10∼11점 정도가 필요하다. 강팀들을 연달아 격파했으니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실업팀이 고작 3팀에 불과하다. 숫자가 적어 국내리그가 아닌 아시아리그에서 뛰고 있는 실정이다. 제반 시설 여건과 저변도 열악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이런 한국이 1부 리그에 진입하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로 평가된다. 세계 최고수준인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 아이스하키 강국들과 실력을 겨룰 경우 성장의 발판을 이어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부 리그 승격의 꿈을 한껏 키운 한국은 25일 헝가리와 3차전을 갖는다. 한국은 헝가리에 역대 전적 2승 1무 12패로 열세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백지선號 ‘키예프 기적’ 쓴다
입력 2017-04-24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