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축이 흉하게 잘려나갔던 왕비의 금동신발이 백제 무령왕릉 발굴 46년 만에 완벽한 제 모습을 찾았다. 그동안 자신만 온전한 형태였던 왕의 금동신발이 나란히 진열돼 왕비 신발이 되찾은 우아함을 반기는 듯했다.
공주박물관(관장 김규동)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목관, 왕비의 금동신발 등 주요 유물의 복원 작업을 거쳐 웅진백제실을 새롭게 단장했다. 일반 관람 개시에 하루 앞서 언론에 공개된 전시장을 24일 찾았다.
웅진백제실은 한성과 사비를 잇는 웅진백제기(475∼538)의 종교 사상 대외교류 등을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출토품 등 360건 980여점의 유물을 통해 보여주도록 꾸몄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웅진백제기의 안정된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물량도 최대이지만 최초 공개가 수두룩했다. 웅진백제기의 번영을 일군 무령왕(462∼523, 재위 501∼523)과 왕비가 묻힌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무덤 양식이 유명하다. 출토품 중에는 국보 154호 관꾸미개 등 국보만 10여점에 달한다.
하지만 1971년 발굴 당시에는 철야작업 끝에 하루 만에 서둘러 유물이 수습되면서 졸속 발굴의 대명사로 오점을 남기고 있다.
이런 이유로 무령왕릉은 왕과 왕비의 시신이 모셔졌던 목관, 부장품으로 묻었던 금동신발, 나무 베개와 나무 발받침 등 상당수 유물이 훼손된 상태로 수습돼야 했다. 10년 넘는 복원 작업을 거친 끝에 그 유물들이 본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공주박물관 배영일 학예연구실장은 “왕비 신발의 경우 수습된 흙을 체로 쳐서 수백 개의 파편을 골라냈고 지난해부터는 제 위치를 찾아 붙이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왕비의 금동신발은 봉황 등 갖가지 식물과 동물을 투각무늬로 새겨 화려하기 그지없다.
고고학적으로 더 의미 있는 것은 왕과 왕비가 묻혔던 목관이다. 그동안은 목관에 사용된 판재만 부분적으로 특별전 등에서 전시됐을 뿐이다. 뚜껑 판이 5개로 된 왕의 목관, 3개로 된 왕비의 목관이 장엄한 외양을 한 채 나란히 진열됐다. 15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낸 목재는 은제 마감 장식과 꽃 모양 못으로 결합돼 본모습을 찾았다. 목재는 일본 남부 지방에서 건너온 금송으로 백제의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보여준다.
관속의 부장품인 왕비의 금동신발과 함께 나무 베개(두침), 나무 발받침(족좌)도 안료 안정화, 금박 위치 확인 작업 등을 거쳐 선명한 본래의 무늬와 색상을 되찾았다. 왕의 나무 베개와 나무 발받침은 현재 복원 작업 중이라 이번엔 복제품이 전시 중이다.
김규동 관장은 “백제시대 목관이 이처럼 온전한 형태로 복원된 것은 유일하다. 삼국시대 목관 구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면서 “아울러 금동신발 베개 등의 복원으로 웅진기에 사용됐던 문양의 연구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부러진 왕비의 금동신발 복원… 왕의 금동신발 옆으로
입력 2017-04-2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