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공간] 하나님의 방법으로 키운 ‘27㎡의 은혜’

입력 2017-04-25 00:03
유영숙 권사(가운데)가 운영하는 서울 압구정로 27㎡(8평) 공간의 김밥집. ‘하나님 윤리경영’을 하며 김밥 하나로 자산가가 된 유 권사는 소외된 이웃에 번 돈을 흘려 내보내고 있다.
유 권사가 소년원을 출소한 희웅과 나눈 문자 대화.
27㎡ 공간의 은혜는 30년 간 계속됐다. 유영숙(73·서울 온누리교회) 권사는 1987년 서울 압구정로 현대아파트 상가에서 김밥집을 시작했다. 8평이었다.

유 권사는 30년 전 그 자리에서 여전히 김밥을 말고 있다. 종업원 3명과 함께였다. 메뉴는 김밥과 유부초밥 딱 두 종류다. 주방은 여느 식당에서 볼 수 있는 풍경 그대로다. 네 사람의 작업자가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기 쉽지 않아 보였다. 다행히 매장의 3분의 2가 주방이다. 손님을 위한 탁자가 없다. 사가기 때문이다. 이 김밥집 ‘후렌드’는 압구정동과 강남 사람들에겐 유명한 곳이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용했을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데도 줄서서 사간다.

“하나님 은혜 아니면 어림도 없었죠.”

김밥집 30년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유 권사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장사하고 남은 이윤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처음 각오를 실천했다. 이웃을 위해선 통 크게 쓰고, 자신을 위해선 매니큐어조차 바르지 않는다. 주방에 ‘절약은 평생만족, 낭비는 하루만족’이라고 글이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유 권사는 하루 수익금 중 일부를 새 돈으로 남겨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다. 87년 이후 10년 주기로 매일 2만원, 5만원, 7만원을 새 돈으로 뗐다. 단 하루도 예외가 없다. 탈북자, 학교밖 청소년 등을 위해 수천만원씩 기부하는 것과 별개다. 국민일보가 지난해 학교 밖 아이들 실태를 보도한 ‘소년이 희망이다’에도 수백만원을 냈다.

그가 후원하는 기관은 기아대책 등 10여개에 달한다. 김밥집 한쪽에 지로용지가 수북했다. 기아대책에는 30여년을 매달 10만원씩 기부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부할 곳에 대한 답을 주세요. 0.1초도 하나님 은혜니 그대로 해야죠.”

유 권사는 김밥 하나로 압구정 자산가가 됐다. 그러나 그 자산은 흘려 내보낸다. 비싸다는 압구정 아파트 집은 검소 자체였다. 3년 전 유 권사는 칠순잔치를 하긴 했다. 한데 탈북자 60여명을 초청해 부페에서 푸짐하게 먹였다. 시골교회 목사, 인연 맺은 장애인, 서울소년분류심사원 등 그의 손길이 미치는 곳이 헤아릴 수 없다. 무엇보다 일회성이 아니라 20여년 이상 정기적으로 돕는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 마음이 가야죠.”

그가 김밥집을 하게 된 것은 30여년 전 경찰공무원이던 남편이 신원보증에 관한 무고로 파면을 당하면서다. 훗날 복직됐으나 그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진정이 무고여서 남편의 원망이 말도 못했어요. 한데 우연히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가면 재워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교회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비 철철 맞고 갔어요. 한데 다들 이상하더라고요. 울부짖고, 미친 듯이 아멘하고… 성령이 이끌지 않았으면 어떻게 거길 갔겠어요.”

기도원에 다녀온 후 압구정 아파트에 사글세로 입주했다. “당시에는 어느 지역보다 월세가 쌌다”고 했다. 그는 집에서 햄버거와 김밥을 만들어 팔았다. 한데 민원이 심해 상가 월세를 얻었다. 그것이 오늘 ‘8평 은혜’의 시작이었다. “당시 빚을 냈어도 2만원은 반드시 뗐다”고 했다.

“남들이 9시쯤 가게를 연다면 저는 아침 6시 가게 문을 열었어요. 출근하는 사람들이 담백한 맛이라며 줄을 서더라고요.” 하루 9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유 권사는 김밥 먹을 틈도 없이 바빴다. 김밥 포장하다 소년원을 나온 희웅(가명)에게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예수님 마음으로 너를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내는 등 잠시도 쉬질 못했다. 그러다 서둘러 가게를 나서는데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서울 안암동 병문안 간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나 내 손길이라도 필요한 분”이라고 했다. 그가 빠져 나간 가게는 20년 넘게 같이한 종업원들이 대신했다. 퇴직금이 있는 김밥가게다. 유 권사는 작은 공간에서 하나님 방법의 경영을 하고 있었다.

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