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유승민 바른정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3일 중앙선관위 TV토론이 시작되자마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돼지 흥분제’ 사건에 가담한 홍 후보를 대선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며 공동 전선을 폈다. 안 후보는 홍 후보에게 질문할 땐 아예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사퇴 포문은 심 후보가 열었다. 심 후보는 ‘북핵 위기 타개책’이라는 첫 질문을 받자마자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홍 후보를 직격했다. 이어 “홍 후보와는 토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 후보와 안 후보도 가세했다.
홍 후보는 토론회 초반 연이어 터져 나온 사퇴 촉구에 처음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애써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유 후보가 ‘강간 미수 공범’이라는 표현을 쓰자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홍 후보는 “제가 사퇴하는 것이 안 후보에게 도움이 되는 모양이죠”라는 식으로 답변을 회피했지만 안 후보는 “그런 것과 상관없다. 사퇴하십시오”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당황한 표정의 홍 후보는 “45년 전 제가 18살 때 고대 앞 하숙집에서 있던 사건”이라고 해명을 시작했다. 그는 “친구가 성범죄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막지 못한 책임감을 느껴 12년 전 자서전에서 고해성사했다”며 “고해성사까지 했던 일을 또 문제삼는 것은 참 그렇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도 “제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가 한 것을 못 막은 데 대해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홍 후보는 2005년에 쓴 자서전에서 하숙집 동료 중 한 명이 마음에 드는 여학생과 야유회를 가기 전 돼지 흥분제를 구해 달라고 요청해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이 구해줬던 일화를 소개했다.
심 후보는 홍 후보에겐 아예 질문하지 않았다. 안 후보는 홍 후보에게 두 번 질문했는데, 모두 카메라에 대고 했다. 후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제스처였다.
토론회 초반 주춤했던 홍 후보는 후반 반격을 시도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를 언급하자 홍 후보는 “문 후보는 성완종을 두 번 사면해줬는데, 맨입에 해줬나”라고 거듭 받아쳤다. 홍 후보는 문·안 후보의 말 바꾸기 논쟁을 지켜보다가 “초등학생 감정싸움인지 대통령 후보 토론회인지 알 길이 없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질문을 카메라에 대고 하는 안 후보에겐 “(저를) 보고 말씀하시죠. 국민들이 조잡스럽다고 생각한다”고 힐난했다. 그는 “천주교에선 고해성사를 하면 살인범도 용서한다”고 말해 또다시 논란을 예고했다.
이번 토론회에선 후보당 18분의 자유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첫 번째 주제(외교·안보)가 끝날 무렵 후보별로 남은 시간은 10분대(홍 후보)에서 3분대(유 후보)로 차이가 났다. 질문이 특정 후보에게 몰리거나 상호 비방으로 흐를 경우 사회자가 개입해 발언자를 지명할 수 있도록 룰을 정했지만 효과는 없었다는 평가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대선 후보 TV 토론]‘돼지 흥분제’ 후보 사퇴 협공에… 고개숙인 洪
입력 2017-04-24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