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사람이 무서워∼ ‘사회공포증’ 20대를 노린다

입력 2017-04-25 05:00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가 21일 내원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지난해 4429명의 20대가 사회공포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곽경근 선임기자
A씨(49)는 서울의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평소 강의시간에 재미있는 사례나 재치 있는 농담을 곁들여 강의 평점이 좋았다. 어느 날 강의 중에 혀가 조금 말렸다. 발음이 부정확해졌고, 문득 학생들이 자신의 농담을 이해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창피하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부터 A씨는 강의실에 들어가려고만 해도 긴장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매일 하던 강의인데도 갑자기 말하려는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강의 중간 쉬는 경우가 잦아졌다. 2∼3명 학생과의 대화는 특별한 지장이 없지만, 강단에 올라가게 되면 말을 꺼내는 것이 두렵고 피하고 싶어졌다.

사람 앞에만 서면 두근두근

사회공포증(사회불안장애)은 A씨처럼 다른 사람에게 관찰을 당하는 상황에서 현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불안장애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 앞에서 바보스러운 모습이나 당황한 모습을 보인 듯한 불안을 경험하는게 계기가 돼 사회공포증을 앓는다. 여러 사람 앞에 서는 대중연설이나 무대 발표 중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흔한데, 심하면 일상적인 만남 등 대인관계 상황에서도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사회공포증 환자가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떨림이다. 타인 앞에서 발표하거나 대화할 때 손이나 신체 일부, 목소리가 떨린다. 얼굴이 붉어지는 적면 공포도 있다. 상대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시선 공포도 한국에선 흔하다. 자신의 외모로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다고 믿거나 자신에게서 혐오스러운 냄새가 난다고 믿는 사회공포증 환자도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A씨와 같이 특정 사건으로 사회공포증을 앓는 경우도 있지만 환경적·유전적 요인도 있다. 한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모두 사회공포증을 앓는 경우는 있지만 유전적 요인인지 학습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도 사회공포증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세로토닌 등 감정을 조절하는 뇌 화학 물질이 비정상적으로 작용할 때 사회공포증이 생긴다는 진단이다. 뇌에서 학습과 동기, 감정 정보를 처리하는 편도체가 예민할 경우 조금만 긴장해도 과장된 공포 반응을 겪을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청년에게서 잘 일어나

B씨(29·여)는 대학 도서관 사서로 2년째 일 해왔다. 어느 날 도서관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글이 교내 게시판에 붙었다. 도서관장도 그 글을 보고 서비스를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B씨는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지워진 듯 했다. 그 날 이후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글씨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해졌다. 도서 대출을 원하는 학생의 이름을 쓰거나 사인을 할 때마다 손이 떨렸다. 글씨가 흔들려서 알아보기 힘들다는 걱정도 들었다.

혼자서 글을 쓸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사람 앞에서 행동할 때는 일거수일투족이 불편했다. 글을 쓰는 것만 아니라 식당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도 손이 떨려 왔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실수할까 두려워지고 긴장이 되는 데다 손도 떨려서 어떤 일도 마음 놓고 할 수가 없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사회공포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만7758명으로 2013년 1만6506명보다 7.5% 증가했다고 23일 밝혔다. 특히 B씨와 같은 20대는 같은 기간 4032명에서 4429명으로 9.8% 늘었다.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많이 사회공포증을 앓은 연령대는 40대(4487명)이지만, 2013년 4340명에서 거의 증가하지 않은 것을 고려했을 때 20대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병원을 찾지 않은 20대 사회공포증 환자는 더 많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일반인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서 만 18∼29세의 1%가 지난해 한번 이상 사회공포증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모든 연령을 통틀어 가장 높은 비율이다. 사회공포증은 미혼이거나 미취업 상태일 때 더욱 발병률이 높았다.

복지부는 역학조사 보고서에서 “사회공포증 등 불안장애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해야하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도 기여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보고서는 “지난 2월 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 수치인 5.0%를 기록했으며 청년실업률도 12.3%로 높은 상태에서 고용불안, 주거불안 등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젊은 연령층의 사회공포증 증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치료 방법은?

강북삼성병원 정신겅강의학과 오강섭 교수는 “사회공포증이 발병하는 나이는 대개 10대 중반으로 보지만 10년간 혼자 고민하다 20대 중반에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예민한 사춘기에 사회공포증이 발병하면 공부를 방해하게 되고 사회기능에 장애를 초래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사회공포증 치료는 대인관계나 대중 앞에 나서야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이나 무의식 중에 드러나는 회피 행동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투여하는 약물치료와 정신사회적 치료가 있다. 정신사회적 치료는 잘못된 인지와 행동을 치료하는 인지행동치료가 주로 이뤄진다.

인지행동치료는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받는 게 효과적이다. 교육과 토론으로 잘못된 생각을 찾아내 합리적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어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고 찾아나서는 노출치료도 있다. 연설하기 전에 “나는 연설경험이 적어 매우 떨립니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증상을 사람들에게 알리면 행여 실수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줄어들게 된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