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 시절인 2007년 11월 18일 청와대 회의에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찬성하는 게 낫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회의록 메모를 민주당이 공개했다. 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인권결의안 표결 전 북한 반응을 보고 입장을 결정하자는 발언을 한 정황도 확인됐다. 송 전 장관이 자신의 회고록과 문건 등을 통해 공개한 내용을 정면 반박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민주당 선대위 김경수 대변인이 공개한 자료는 2007년 11월 18일 오후 8시30분 청와대 서별관에서 열렸던 회의 기록의 일부다. 이틀 전인 1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결의안 표결 기권 결정을 내린 뒤 다시 열린 것으로, 회의에 배석했던 박선원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수첩에 기록한 것이라고 민주당은 밝혔다.
기록에는 문 후보 발언으로 “양해·기권한다는 것이 정무적으로 큰 부담” “연말까지 북에 지원하는 데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는데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면 그런 비판을 피할 수도 있음” 등이 적혔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사전 양해를 구하거나 표결에 기권하는 것보다 오히려 찬성표를 던지는 게 낫다는 취지다.
또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 발언으로 “지난 15일 조정회의에서 의견이 갈려서 16일 VIP께 보고드렸으나, 의견이 갈려서 기권으로 VIP께서 정리”라고 적혀 있었다. 김 대변인은 “18일 회의에서 16일 노 대통령이 기권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고 말했다.
수첩에는 송 전 장관과 백 전 안보실장이 북한에 보낼 통지문 문구를 조정하는 듯한 대화 내용도 담겨 있다. 백 전 안보실장은 “사전 통지를 한다면 어떤 문장으로 할지”라고 물었고, 송 전 장관은 “北(북)에 사전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라면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것이 낫다. 최대한 한다면 ‘우리는 작년에 이렇게 했듯이 올해도 이렇게 간다’는 정도로 설명해서 北의 반응에 따라 보고해서 결정한다”고 답했다. 송 전 장관 발언 중에는 “작년에는 EU 초안에 수정의견 없이 찬성했음. 올해는 이렇게 저렇게 애썼다는 것은 설명하자” 등의 내용도 있었다. 통지문에 정부가 인권결의안 내용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담아 전달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송 전 장관의 발언 이후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우리 정부가) 이런 노력을 했다. 그러니 (표결에) 찬성한다’는 내용을 넣어서 북에 전하자”고 했고, 송 전 장관은 “‘양해’라는 말만 들어가지 않게 하자”고 동의했다.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은 그러나 “이걸 놓고 북과 사전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반대했다.
홍익표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18일 회의는 기권 결정 이후 북한 반응을 보기 위한 통지문 문구를 논의했던 자리였다”며 “대통령 결정을 장관들이 뒤집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재정 전 장관도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16일 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하기로 다 결정이 됐었다. 그런데도 송 전 장관이 밤에 (노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고, 싱가포르에서도 얘기하고 한 것”이라며 “송 전 장관의 항명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18일 회의는) 안보실장이 주도했다. 또 윤병세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회의에서 스스로 작성해온 (통지문) 초안을 읽었다”며 “외교라인에서 북한 입장을 파악해 보자고 했던 게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문재인 “기권은 큰 부담”… 오히려 결의안 찬성 입장
입력 2017-04-23 18:02 수정 2017-04-23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