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개발기구 기아대책 네팔지부에서 활동 중인 발크리스나 버떠라이(40·사진) 선교사는 한국의 주물공장에서 일했다. 한국교회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됐고 신앙교육을 받았으며 기아대책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네팔로 돌아왔다. 그는 네팔에 파송된 기아대책의 첫 번째 현지인 선교사다.
국민일보와 기아대책이 함께하는 ‘회복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 18∼21일 기아대책의 네팔사역 현장을 방문했다가 버떠라이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현지인이라는 장점을 살려 기아대책의 아동개발프로그램(CDP) 정착에 필수적인 현지인과 소통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는 아동 개발 및 지원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고학으로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버떠라이 선교사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공부가 하고 싶었던 그는 여덟살 때부터 남의 집에서 일하며 학교를 다녔다. 첫 번째 집에선 염소 우리에서 염소와 함께 살았다. 우리 안에 책상을 놓고 공부도 하고 그 위에서 잠도 잤다. 학년이 올라가자 더 많은 학비가 필요했다. 그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정으로 옮겼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고 막일을 하며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하루는 친구가 한국에 가서 일을 해 돈을 벌자고 했다. 2003년 4월 한국을 찾았다. 첫 직장은 대구의 주물공장이었다.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지게차에 발이 깔리는 사고를 겪었는데 제대로 치료도 보상도 받지 못했다. 산업재해보험 처리를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 사장이 “다 됐다”며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몸은 몸대로 상했고 치료 받느라 일을 못해 돈도 벌지 못했다.
예수를 만난 건 그때였다. 2004년 공장 인근에 있는 대구평화교회(고경수 목사)를 스스로 찾았다. 외국인근로자 사역을 하는 교회였다.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릴 때 가졌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 형편은 별로 나아지진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교회에서 만난 네팔 사람들 6명과 함께 ‘네팔 아이 6명 학교에 보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6개월도 되지 않아 이 모임은 해산했다. 그때부터 아이 6명은 그가 모두 맡아 후원했다. 이 중 4명은 올해 고등학교를 마쳤고 2명은 내년에 졸업한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네팔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기도 중에 연결된 곳이 기아대책이었다. 자비를 들여 기아대책 훈련에 참가했고 후원자도 모았다. 2010년 4월에는 마침내 고국인 네팔로 파송될 수 있었다.
버떠라이 선교사는 “네팔의 언어와 문화 등을 잘 알기에 현지 사역에 강점이 있다”며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를 많이 훈련시켜 각자의 나라로 파송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현지인을 파송하면 체류비 등 선교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면서 “해외선교팀을 꾸릴 때 현지인을 반드시 포함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카트만두(네팔)=글·사진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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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주물공장 다닐 때 예수님 만나 고국 네팔 파송 돼 어린이 돌봄 사역
입력 2017-04-24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