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부처는 카르텔 견고… 핵심 요직 교류 안돼”

입력 2017-04-24 05:01
고위공무원단(고공단) 제도가 시행되기 2년 전인 2004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태평 세제실 국장은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영록 재경부 국장 역시 외교통상부로 갔다. 두 사람은 당시 경력을 발판삼아 훗날 농식품부 장관과 재경부 2차관을 역임했다.

고공단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째인 2015년 말 김학현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재중 서울사무소장을 불렀다. 김 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지시 거부’ 등을 이유로 본부 국장에서 서울소장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상태였다. 공정위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김 부위원장은 김 소장에게 앞으로 고공단 내 하위 10%를 분류해 재교육을 시키는 제도가 만들어진다며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지 말고 소비자원 부원장으로 갈 것을 강요했다. 고공단에 속한 이 고위관계자는 23일 “10년 전에도 있었던 생산적인 부처 간 인사이동은 사라졌고, 대신 고공단 제도가 공무원 길들이기로 악용되고 있는 생생한 사례”라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고공단에 소속된 경제·사회 부처 실·국장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보니 모두 현 제도를 그대로 운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부처 A국장은 “기재부 예산실 등 핵심 요직은 부처 간 교류에서 제외된다. 이른바 힘 있는 부처 내 공고한 카르텔(담합)이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부처 B국장 역시 “고공단 풀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재교육을 강화해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부처에도 투입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30년 가까운 경력을 쌓은 고급인재들이 정권이 바뀌면 퇴물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고공단에 대한 청와대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사회부처 C실장은 “고공단에 대한 장관 인사권을 강화해야 소신 있는 정책을 펼 수 있다”면서 “장관조차 보호해주지 않는데 실·국장들이 어떻게 청와대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책을 밀고 나가겠느냐”고 반문했다. 경제부처 D국장 역시 “예전 윤증현 재경부 장관의 경우 청와대에 밉보인 모 국장을 끝까지 감싸줬다”면서 “현 정부에서 그런 장관은 한 명도 없었고 설령 있었어도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위공무원직의 민간 개방 확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쪽은 현재의 보수 체계로는 능력 있는 민간인이 공직에 오기 힘들다는 점을 짚은 반면, 일부는 1∼2년 ‘튀는 성향’의 민간인 출신이 와서 오히려 정책을 어지럽힌다는 부정적인 면을 거론했다. 경제부처 E국장은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이 강조했던 민간휴직제도는 여러 문제점이 도출되면서 이 처장이 떠난 뒤 원상복귀됐다”며 “오히려 혼란만 일으킨 셈”이라고 지적했다.

인사혁신처의 과도한 통제와 간섭은 고위공무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경제부처 F국장은 “장관이 오히려 인사처에 가서 매달려야 하는 기형적인 제도”라고 꼬집었다.세종=이성규 조민영 신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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