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미묘한 시기 미묘한 문건 재폭로 왜

입력 2017-04-23 17:59 수정 2017-04-23 21:29
노무현정부 당시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2007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을지국무회의 참석을 위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국민일보DB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이 23일 공개한 자료에 대해 “중간 논의 과정이 빠져 있다”고 맞섰다. 2007년 11월 1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키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는 문 후보 측 주장에 “기권 결정이 난 것은 16일이 아니라 20일”이라고 자기 입장을 고수했다.

송 전 장관은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 후보가 외교·안보정책 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지 않았다는 주장 역시 반박했다. 송 전 장관은 “문 후보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서 후속 조치도 본인이 담당했다”면서 “11월 18일 회의가 열리기 전날 문 후보가 내게 전화해 ‘대통령 생각이 기권이니 그대로 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고 했다.

송 전 장관은 인권결의안 찬성 입장을 굽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 미국은 남북정상회담을 급히 추진한 한국 정부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원칙을 가져야 미국도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간주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송 전 장관이 10년 전 일을 두고 문 후보 측과 극한 대립을 벌이는 의도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송 전 장관은 문 후보가 자신의 회고록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탓에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선이 2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민감한 문서를 공개한 것은 어떻게든 정치적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많다.

송 전 장관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지난해 10월 회고록 출간 직후부터 나왔다. 송 전 장관이 당시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지원하기 위해 회고록에서 문 후보에 불리한 내용을 기술했다는 게 문 후보 측 시각이다. 또 송 전 장관의 최근 청와대 문건 공개와 관련해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과의 연계설이 문 후보 측에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송 전 장관이 당시 대북 유화파에 품었던 불만이 뒤늦게 폭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외교부가 완전히 배제됐다고 한다. 송 전 장관은 남북정상회담 공식 발표 당일에야 그 사실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후보 측 자료를 보면 송 전 장관도 대북 통지문 문안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송 전 장관이 회고록을 작성하면서 일종의 ‘기억 왜곡’을 겪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청와대를 장악하고 남북관계를 주도한 386그룹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배제됐을 수 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