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실장급) 고위공무원 251명 중 민간인 출신은 11명(4.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성과평가에서 5단계 평가등급 중 가장 낮은 ‘매우 미흡’을 받은 고위공무원도 32명(0.3%)뿐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청와대가 과도한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고위공무원의 ‘청바라기 현상’이 심해졌다. 연공서열을 폐지하고 전문성과 개방성을 강조하겠다는 고위공무원단(고공단) 제도의 취지는 무색해졌다. 차기 정부에서 정부조직 개편보다 이 제도를 먼저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23일 인사혁신처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급 고위공무원 자리 중 민간과 공무원이 경쟁하는 개방형 직위는 20개(지난해 말 기준)다. 이 중 11개가 민간인 출신이지만 부처 산하기관장 등 대다수가 중요도가 떨어지는 자리다. 나머지 9자리는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 문화체육부 관광정책실장 등 부처 내 요직으로 대부분 해당 부처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힘 있는’ 기획재정부는 고공단 내 6개 개방형 직위 중 1개 직위만 민간인에게 개방했다. 이 역시 한국은행과 인사교류 형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이수형 교수는 “부처를 넘나들면서 적재적소에 유능한 고위관료들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엄정한 평가로 신상필벌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고공단 제도 도입 이후 매년 가장 낮은 평가등급을 받은 고위공무원은 100명 중 1명도 안 됐다. 오히려 고공단 제도는 해당 부처 장관의 인사권을 약화시켜 ‘정치적’ 고위공무원만 양산했다는 비판이다. 경제부처 고위관계자는 “현 정부에서는 실·국장 승진은 물론이고 국장급 보직 이동까지 고공단 소속이라는 이유로 청와대가 관여했다”면서 “장관은 힘이 빠지고 고위공무원은 청와대 눈치만 보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꼬집었다.
과거 연공서열식의 1∼3급 계급제 폐단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고공단 제도가 ‘가급=1급 실장, 나급=2·3급 국장’으로 회귀하면서 고위공무원의 정치적 도구화라는 부작용만 양산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사례처럼 민간 출신 인력을 별도로 관리하는 등 고공단 제도를 실효성 있게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와 복지 등 분야별 인사이동, 장관 인사권 강화 등 개선할 점이 많다”면서 “차기 정부는 정부조직 개편 전에 인사제도 핵심인 고공단에 대한 개선책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이성규 신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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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부처간 벽 허물고 개방? 그들만의 ‘독식’ 전락
입력 2017-04-2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