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도 1급 일괄 사표 받을까?

입력 2017-04-24 05:00

차기 정부 출범을 20일 앞두고 있는 요즘 정부부처 1급 고위공무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일부는 박근혜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참여정부 시절 경력을 강조하고 있다. 몇몇은 마음을 비우고 은퇴 후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상 장·차관이 아닌 1급 이하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돼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1급 공무원들은 ‘전 정부 사람’으로 낙인찍혀 일괄 사표를 강요당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고위공무원단(고공단)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런 잘못된 관행이 끊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1급 공무원들의 일괄사표가 이어지는 것은 정권의 ‘공무원 길들이기’ 성격이 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11월 “생각이 다르면 병이 나고 그러면 홍보 효과가 떨어진다”는 말로 대대적인 정부부처 인사를 예고했고 주 타깃은 1급 공무원이었다. 이 전 대통령 발언 직후 국무총리실을 필두로 1급 공무원들의 일괄사표가 줄을 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된 ‘실세’ 공무원들이 빈자리를 메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인사 검증이 필요하다며 각 부처의 실·국장급 인사를 보류시켰다. 겉으로는 책임 장관제를 외쳤지만 첫 내각에 입각한 장관들은 부처 실무진 인사조차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했다. 결과는 이명박정부 때처럼 집권 2년차에 1급 공무원들의 줄사표가 이어졌다.

정권의 이런 관행은 청와대 한마디에 좌지우지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을 양산했다. 정권이 교체되는 5년마다 살아남기 위해 고위공무원들은 장·차관처럼 정무직화될 수밖에 없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8월 누진제 논란 초기 공식적으로 누진제 완화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집에서 전기요금 때문에 냉방기도 마음 놓고 쓰지를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박 전 대통령 한마디에 입장을 선회했다. 지난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완화에 부정적이었던 공정거래위원회도 청와대 입장을 따라 자산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으로 완화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고위공직자들도 입을 모아 청와대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명지대 행정학과 한승주 교수는 23일 “고공단제도가 도입된 2006년 이후 언론에서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표현이 더욱 빈번해졌다”며 “차기 정부에서 1급 일괄사표를 정치적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