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메기야, 은행을 부탁해

입력 2017-04-23 18:58

“4차 산업혁명이니 핀테크(금융과 IT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니 하는데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은행이요? 두렵기는 합니다.” 며칠 전, 시중은행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서였다. 화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시작해 중국의 ‘핀테크 돌풍’을 거쳐 우리 인터넷은행으로 이어졌다. 담담하게 듣던 A부행장은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어느 때보다 ‘변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큽니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기업)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기업)라도 되면 다행입니다.”

지난 3일 우리나라의 첫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가 문을 열었다. 개업 3일 만에 10만명, 2주 만에 20만명의 가입자가 몰리자 은행들은 물론 금융권이 깜짝 놀랐다. 4200만명의 카카오톡 가입자를 품고 있는 카카오뱅크가 6월에 등장하면 ‘충격’은 ‘공포’가 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그동안 금융권, 특히 은행들에 변화나 혁신은 간절하지 않았다. 은행은 대표적인 ‘라이선스(면허) 산업’이다. 진입장벽이 높고 정부의 규제가 촘촘한 대신 한번 면허를 따면 안정을 누릴 수 있다. 정부의 우산 아래에 있다 보니 우리 금융시장의 성숙도는 80위(2016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138개국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그친다. 77위인 우간다보다 낮다.

이 숫자 뒤에는 ‘반갑지 않은 역사’가 숨어 있다. 인터넷은행은 1995년 미국에서 SFNB(Security First Network Bank)가 설립된 뒤 영국 일본 등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점점 관련 기술도 발달했다. 반면 인터넷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는 두 차례나 논의만 하다 접었다. 2002년에는 은산분리(산업자본이 은행업을 할 수 없도록 소유 지분을 제한하는 규제) 원칙, 금융실명제에 부딪혀 좌초했다. 2008년에는 은행산업이 부실해질 수 있고, 수익모델이 취약하며, 과당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은행업법 개정안이 거절당했다.

그러는 동안 각국에서 인터넷은행을 포함한 핀테크는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2009년 독일에서 등장한 피도르(Fidor)은행은 영업철학이나 IT시스템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은행으로 꼽힌다. 피도르은행은 귀금속, 온라인 게임머니, 비트코인 등 거의 모든 금융서비스 상품을 온라인·모바일에서 다룬다.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SNS를 통해 자금이체도 할 수 있다. 이 은행은 자산·대출·예금이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인터넷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 등은 인터넷은행업에 뛰어들었다.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중국은 핀테크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식사자리가 끝날 즈음 A부행장은 말했다. “정말로 케이뱅크나 카카오뱅크가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부에게 잡혀 수족관 안에 갇힌 정어리들은 나태해지면서 점점 죽어갑니다. 그런 정어리들이 펄떡펄떡 뛰려면 메기가 필요합니다. 메기효과 말입니다.” 정말로 걱정하는 말투였다. 금융은 대표적 서비스업이다.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4차 산업혁명이 부를 일자리 파괴·감소를 우려하는 상황에서 핀테크, 인터넷은행은 ‘엘도라도’가 될 수 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거창하게 국가경제를 생각하는 게 아니다. 당장 10년 뒤 취업시장에 나올 내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힘내라, 메기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