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완료는 차기 한국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한 백악관 외교고문의 발언이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회담 후 공동발표를 통해 사드 조속 배치를 재확인했고, 미 국무부 역시 사드 배치는 “예정된 단계를 밟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우리와 협의 없이 사드를 매개로 미·중 간 모종의 거래가 오간 것 같은 정황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물론 백악관 고문이 대선 전 사드 배치 완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일 수 있다. 한·미 양국은 사드부지 공여에 합의했지만, 추가 장비 전개를 본격화해 배치를 완료하는 과정은 차기 정부와 미국이 협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에 무역양보를 제시할 만큼 ‘과감한’ 협상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사드 역시 협상카드로 고려하고 있을 개연성은 있어 보인다.
사드를 매개로 미국이 북핵에 관한 중국 협조를 유도하려 한 정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4차 핵실험 후 한·미 양국은 2월 7일 사드 배치 협의 개시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은 2월 23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동한 후 “사드를 배치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고, 비핵화가 진전을 이루면 사드는 필요 없다”는 발언을 했다. 이틀 후 해리 해리스 태평양 사령관 역시 하원 청문회에서 “사드 배치를 협의한다고 반드시 배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들의 발언 이후 한국 언론에서는 사드를 매개로 한 미·중 빅딜설이 불거져 나왔고, 미·중이 한반도 문제를 놓고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연상시키는 결탁을 했다는 평가도 등장했다. 하지만 미·중 간 사드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고, 사드 배치는 7월 전격 결정되었다. 이번에도 미국 정책가의 말 한마디에 너무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북핵 문제를 미·중 협상에 위탁해 놓으면 당사국인 우리의 입장이 소외될 수 있고, 따라서 “한·미 공조는 물샐틈없다”는 정부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한·미 관계의 특수함을 강조해도 국제정치의 속성상 한반도 문제는 미·중 강대국 정치의 거래품목이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국이 소외된 강대국의 빅딜을 예방하기 위해 다음을 제안한다. 첫째, 차기 정부는 어렵더라도 한·미·중 3자 대화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3국은 전략적 셈법과 방법론의 차이는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책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한·중, 미·중 양자 채널로만 한반도 문제를 다룬다면 종국에는 우리의 입장이 소외될 수 있으니, 소다자(小多者)주의 틀 안에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본능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차기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제재일변도의 정책보다는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핵화가 전제돼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미국, 조속한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진행)과 쌍중단(雙中斷·핵실험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중단)을 주장하는 중국,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해줘야 대화하겠다는 북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이들 주장의 접점을 조율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 북핵문제 주도권을 어느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
북한 핵은 남북 간 문제임과 동시에 지역 역학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국제문제이다. 따라서 강대국 간 이익조정이 문제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당사국인 우리가 미·중 협상을 뒷전에서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트럼프-시진핑 정상 간에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이 오갔다고 하니 우려는 더 깊어진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반도포커스] 코리아 패싱을 예방하려면
입력 2017-04-24 0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