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라 익숙지 않은 탓도 하지만 안무가님이 원하는 움직임이 정말 까다로워요.”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국립발레단 연습실. 5월 5∼7일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발레단 신작 ‘수월경화-허난설헌’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조선시대 여성 시인 허난설헌의 삶과 시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34명이 출연하는 55분짜리 2막 발레. 허난설헌 역의 수석무용수 신승원(30)은 2인무 파트너 이재우(27)와 함께 같은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재우의 다리 위에 누웠다가 몸을 꼬아서 다리를 내리는 등 얼핏 봐도 고난도 동작의 연속이다.
신승원이 지칭하는 ‘안무가님’은 국립발레단 후배인 솔리스트 강효형(29)이다. 입단 8년차인 강효형은 국립발레단이 ‘왕자 호동’ 이후 8년 만에 도전하는 전막발레의 안무를 맡았다. ‘요동치다’ ‘빛을 가르다’ 등 10분 안팎의 소품 2개를 선보인 게 전부지만 강수진 단장이 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기회를 준 것이다.
신승원과 함께 허난설헌 역으로 더블캐스팅 된 수석무용수 박슬기(31)는 “후배라도 작품을 만드는 동안 안무가로서 존중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게다가 작품에 대한 강 안무가님의 열정은 깜짝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강효형은 강 단장이 취임 이후 주력하고 있는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의 첫 성과로서 주목받고 있다. 강 단장은 안무가의 산실이었던 친정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벤치마킹해 2015년부터 ‘KNB 무브먼트’를 시작했다. 강효형은 국악에 전통춤의 몸짓과 호흡법을 가미한 ‘요동치다’와 ‘빛을 가르다’를 잇따라 선보여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요동치다’는 지난해 7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기획 초청공연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도 선보였다. 강효형은 최근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당스 안무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연습실에서 만난 강효형은 무용수들의 동작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막히는 부분에선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주역 군무 등 여러 팀들의 리허설을 챙기느라 끼니도 거르기 일쑤인 그는 “소품이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전막이기 때문에 신경 쓸 게 훨씬 많다. 55분에 맞는 음악을 뽑아내기 위해 몇 달 동안 귀가 아플 만큼 국악을 들었다”고 웃었다. 하지만 그는 “국립발레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에서 이번 작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책임감이 크다”며 “단원들 역시 다음 기회는 자신들의 차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도와준다. 안무가 아무리 좋아도 작품의 완성은 무용수인데, 단원들 덕분에 잘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강 단장이 그에게 처음 전막발레 안무를 제안한 것은 지난해 5월. 강 단장이 요구한 것은 세 가지다. 한국적일 것, 스토리가 있을 것 그리고 지나치게 모던하지 않을 것. 강 단장의 연임 여부가 결정 안 돼 실제로 공연될지 여부는 미정이었지만 그는 예전부터 관심 있었던 허난설헌을 소재로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그는 “신사임당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대표적 여성 예술가인 허난설헌을 언젠가 무대 위에서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주옥같은 허난설헌 시들 가운데 ‘감우(感遇)’와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을 모티브로 춤을 풀어냈다. 두 편의 시가 시인의 삶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수월경화(水月鏡花)’는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이란 뜻으로 눈에는 보이나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천재 시인이었지만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서 스러져간 허난설헌의 모습을 서정적이지만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 미니멀하지만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형상화한다는 계획이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수월경화-허난설헌’ 리허설 현장] “후배가 안무… 동작 연습 깐깐하게 시켜요”
입력 2017-04-24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