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서울 종로경찰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신고된 10개 집회에 대해 일괄 금지 통고했다. ‘생활 평온 침해’ ‘교통 소통 방해’ 등이 이유였다. 집회 신고 단체들은 경찰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는 구체적인 집회 요건을 검토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4월 경찰에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같은 해 11월 “집회·시위법상 적법한 근거와 절차에 따른 처분이었다”며 권고를 무시했다.
이처럼 인권위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최근 4개월간 인권위가 공개한 권고 불수용 사례만 5건이다. 법무부의 난민인정 심사 절차 개선 권고 불수용, 고용노동부의 채용서류 반환 제도 개선 권고 불수용 등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발간한 인권위 ‘2015 인권통계’에 따르면 박근혜정부 들어 권고수용률은 50%대로 추락했다.
특히 2015년 인권정책 권고 건수 12건 가운데 수용 건수는 0건이었다. ‘검토 중’이 10건, ‘불수용’이 1건, ‘일부 수용’이 1건으로 조사됐다. 인권정책 권고는 인권 보호와 향상을 위해 관련 기관에 법령이나 제도 등을 개선토록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일부 수용’은 2개 항목 이상의 권고 내용 중 일부만 받아들인 경우다. ‘검토 중’은 90일 이상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을 때다. ‘일부 수용’이나 ‘검토 중’은 관련 기관이 인권위 권고를 사실상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수용 건수만 반영해 산출하면 2013∼2015년 인권정책 권고수용률은 평균 29.6%로 노무현정부(54.6%), 이명박정부(35.1%)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진정사건 권고수용률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2015년 진정이 접수돼 인권위가 관련 기관에 개선을 권고한 경우는 173건이었다. 이 중 수용 건수는 75건으로 권고수용률이 43.3%에 불과했다. 2013∼2015년 진정사건 권고수용률은 평균 65.5%였다. 이명박정부는 69.3%, 노무현정부는 82.4%로 역시 박근혜정부가 가장 낮았다.
지난해 설립 15주년을 맞은 인권위가 발간한 ‘2015 인권통계’에 따르면 2011∼2014년 권고수용률은 90%를 웃도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는 권고 건수 중 ‘검토 중’을 제외해 분모를 줄이고 ‘일부 수용’을 포함해 분자를 키워 산출한 것으로 일종의 착시효과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낮아진 권고수용률이 약해진 인권위 위상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4대 인권위원장을 지낸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인권위의 존재감이 약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정부가 인권에 대해 둔감하면 관련 기관들이 같은 태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인권 친화적이지 못했던 이명박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은 박근혜정부에서도 저조한 수용률이 나타난 것”이라며 “인권위 권고에 대한 국가기관의 존중도와 신뢰도가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시민사회의 지지와 함께 인권위의 위상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권의 인권 의식 수준만큼 인권위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사례처럼 인권위 조치에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가현 이상헌 구자창 기자 hyun@kmib.co.kr
[기획] 인권위 권고, 귀막은 정부
입력 2017-04-2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