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실직이나 폐업으로 대출금을 갚기 어려워지면 원금 상환을 최대 3년까지 미룰 수 있게 된다. 주택담보대출을 연체했더라도 집의 경매처분을 1년 동안 늦추는 게 가능해진다.
금융위원회는 20일 연체자 부담 완화방안을 발표했다. 금리 상승기에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연체자가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어 미리 방파제를 쌓는 것이다.
우선 금융위는 원치 않은 실직·폐업 등을 당했을 때 원금 상환유예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실직자가 연체자로 전락하는 걸 막겠다는 의미다. 전체 금융권의 모든 종류의 가계대출을 받은 고객이 가능하다. 실업수당 확인 서류나 폐업신청 서류를 제출해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임을 입증하면 된다. 장기입원했을 때도 원금 상환유예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주택담보대출은 ‘주택가격 6억원 이하의 1주택 소유자’로 신청 자격을 제한한다.
신청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금융회사 심사를 받아야 한다. 처음에는 원금 상환을 1년만 미뤄준다. 2번 연장을 받으면 최대 3년까지다. 원금만 미루는 것이라 이자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원금 2억원에 만기 20년으로 원리금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면 원금 상환분을 제외하고 매월 이자 47만원만 갚으면 된다. 유예기간이 끝난 후 만기를 그대로 20년으로 할지 21년으로 할지 선택 가능하다. 만기를 그대로 유지하면 원리금으로 월 122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매월 내는 돈은 다소 늘어나지만 전체 상환액은 사실상 같다. 만기를 늘리면 그대로 월 116만원만 내면 된다. 하지만 1년을 더 내게 돼 72만원 정도의 부담이 늘어난다.
원금 상환유예 제도는 이르면 하반기 은행권부터 시행한다. 제2금융권도 최대한 빨리 시행할 계획이다. 금융 당국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연체위험 우려 대출자가 은행권에만 77만명가량으로 추정한다. 다만 투 잡(two job)이었는데 실직한 직장 수입이 낮았거나 퇴직금·상속재산·질병보험금이 충분하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막기 위한 장치다.
또한 금융회사가 주택담보대출 연체자의 집을 마음대로 경매에 넘길 수 없게 된다. 반드시 연체자와 1번 이상 상담해야 한다. 연체자가 원한다면 심사를 통해 경매를 최대 1년 늦출 수 있다. 은행은 통상 연체 후 2∼3개월이 지나면 집을 경매에 넘긴다.
연체 기간 30일을 넘는 주택가격 6억원 이하, 1주택 소유자가 신청할 수 있다. 부부합산 소득 7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금융 당국은 8만7000명 정도가 대상이라고 추산했다.
여기에다 금융회사가 대출 연체이자를 함부로 매기지 못한다. 금융위는 이르면 하반기에 합리적인 연체이자 산정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폭등세였던 가계부채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15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17조9000억원)보다 줄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발표한 가계대출 규모(1344조3000억원)를 감안하면 올 1분기에 1360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원으로 지난해 1분기(9조9000억원)에 비해 증가세가 꺾였다. 다만 제2금융권은 계속 늘고 있다. 금융위 도규상 금융정책국장은 “4월에도 가계대출 증가세는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도 “가계대출이 여전히 한국경제에 가장 큰 리스크인 만큼 경각심을 갖고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실직·폐업하면 대출 원금상환 최대 3년 늦춰준다
입력 2017-04-21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