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에게 듣는다-박경호 권익위원회 부패방지 부위원장] 청탁금지법 6개월 “청렴해서 망한 나라 없다”

입력 2017-04-23 20:34
청탁금지법이 시행 6개월을 넘기면서 우리 사회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동안 관행으로 여겼던 접대나 각종 청탁이 크게 줄었고, 무엇보다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해 8월 부임한 박경호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 부위원장(차관급)은 요즘 전국 곳곳을 돌며 현장 강연을 다니고, 법 시행의 실효성을 꼼꼼히 점검하는 등 청탁금지법 조기 정착을 위해 분주하다.

박 부위원장은 쿠키뉴스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청렴해서 망한 나라는 없다”며 “청렴은 최고로 경쟁력 있는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지적하고 있는 청탁금지법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고 청렴하게 변모하기 위한 일시적인 성장통”이라고 단언했다.

검사 출신인 박 부위원장은 그동안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부부장, 대전지검 특수부장, 대검 중수1과장·과학수사기획관 등을 역임하면서 특별수사와 기획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청탁금지법을 만든 김영란 전 위원장 재직 시기(2011∼2012년)에는 국민권익위에 파견돼 법무보좌관으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지난 18일 국민권익위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서 박 부위원장을 만났다.



-청탁금지법 시행 후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를 꼽는다면

▶지난 6개월여 동안 청탁금지법이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을 통해 동참한 우리 국민들의 성숙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 85%가 청탁금지법의 제정과 시행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 중 76%는 관행으로 여겼던 부탁이나 선물이 지금은 부적절한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공직자 가운데 약 70%는 식사·선물·경조사에 쓰이는 금액을 줄이거나 각자내기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인사·계약 관련 청탁이 줄었고, 논문심사비 관행도 개선됐다. 불필요한 접대회식도 감소해 여가시간이 증가하고 있다. 상급자에 대한 선물 관행이 근절되고, 경조사비 부담이 감소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을 통해 불합리한 관행이나 업무방식이 크게 개선됨으로써 사회 전반에 청렴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를 근거로 청탁금지법 시행이 특정 업종의 고용을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표의 해석에 있어 사실과 다르게 보도되거나 다양한 지표 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를테면 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전년 동월 대비 영향업종 종사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는 전년 동월 대비 영향업종 취업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음식점, 주점, 숙박업 등 일부 영향업종의 고용 추이는 관계기관별 조사결과가 상반돼 일관된 영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매출 및 고용 감소는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인 가계부채 폭증, 국내외 정치적 불확실성, 대우조선 및 한진해운의 부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권익위에서는 지난달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을 국책연구기관에 의뢰했다. 여기서 단일지표나 요인이 아닌, 다양한 지표와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공무원의 민간부문 부정청탁 금지규정이 빠져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청탁금지법은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정청탁은 금지하고 있지만, 공직자가 민간인에게 하는 인사청탁 등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결국 민간인에 대한 공직자의 부정청탁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어느 범위까지 규율하고 제재할 지 여부는 입법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항이다. 국민권익위는 민간부문에 대한 부정청탁 통제의 필요성·시급성 등을 감안해 우선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공무원 행동강령(대통령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박 부위원장은 검사 시절을 포함해 26년 공직생활 중 지금이 가장 보람된 시간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권익위는 고충민원, 부패방지, 행정심판, 제도개선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그 중 박 부위원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부패방지 업무는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던 분야다.

박 부위원장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반부패 정책의 최일선에 서게 됐고, 따라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이후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공직자로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박 부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현 세대가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고 이를 제대로 정착시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투명한 사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반부패 정책을 끝까지 실효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렴도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안타깝게도 국제사회에서 인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청렴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올해 초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발표한 2016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76개국 중 52위로 전년도에 비해 15단계나 하락했다. OECD 35개 회원국 중에서는 29위에 머무르고 있고,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싱가포르, 일본, 홍콩, 부탄, 대만에 이어 6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청렴 수준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평가는 대외신인도 저하로 이어져 경제상황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공직자의 윤리의식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공직사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공직자의 윤리의식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국민들이 공직사회에 기대하고 있는 청렴 수준은 매우 높은 반면, 정작 공직자들의 인식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에서 실시한 부패인식도 조사에서도 일반국민 51.6%가 공직사회가 부패했다고 평가했는데, 공직자 스스로 부패했다고 평가한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국민들은 정보 비공개나 복지부동과 같은 소극적 업무처리도 모두 부패로 생각하는데 반해, 공직자들은 여전히 뇌물이나 횡령처럼 돈과 관련되는 것만 부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 같다.

국민권익위는 국민들의 이러한 인식을 공직자들이 무겁게 받아들이고, 공무수행 과정에서 청렴을 실천할 수 있도록 공직자 청렴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 9월부터 모든 공직자들이 청렴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부패방지권익위법이 개정됨으로써 청렴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명심보감에도 ‘관청민자안(官淸民自安 관리들이 청렴하면 백성이 편안하다)’이라는 문구가 있듯이 어렸을 때부터 청렴교육이 필요하다.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부패를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법과 제도만 있다고 청렴한 사회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공정하고 신뢰받는 공직자상을 확립하기 위해 제정된 청탁금지법이 시행 초기 다소 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고 깨끗하게 되기 위한 일시적인 성장통으로 봐야 한다. 과거에는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청탁이나 접대문화에 대해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청렴해서 망한 나라는 없다’ ‘청렴은 최고 경쟁력 있는 상품’이라는 말이 있다. 다음 세대에게 차별 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청렴한 사회를 물려줄 수 있도록 앞으로도 국민권익위가 추진하는 반부패 정책에 지속적인 성원과 동참을 당부드린다.

양병하 기자 md594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