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4년 만에 또 아이를 버렸다. 지난 2015년 윤정연(가명·당시 39)씨는 태어난 지 4시간 된 딸을 병원에 두고 도망쳤다. 처음 저지른 일은 아니었다. 2011년에도 미숙아인 아들을 병원에 놓고 나왔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아이를 퇴원시켜 다른 곳에 버리기까지 했다. 아이는 아동복지시설로 보내졌고, 정연씨는 벌금 100만원을 냈다.
이번에는 정연씨에게 상습영아유기죄가 적용됐다. 상습범이라 법정 최고형에다 그 절반까지 더 형이 길어지는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정연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비교적 아기의 생명, 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산부인과에 아기를 두고 나온 것은 영아유기죄 중 비교적 죄질이 가볍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먹고살기 힘든 데다 생부를 알지 못하는 점도 고려됐다.
국민일보가 2011∼2016년 선고된 영아유기(치사 포함) 1심 판결문 69건을 분석하니 피고인 79명 중 실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1명뿐이었다. 다른 혐의로 함께 재판받은 3명을 제외하면 영아유기죄로만 교도소에 간 사람은 8명, 10.1%였다. 이 중 5명은 다시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끝까지 징역을 산 이는 3명뿐인 셈이다.
기소된 이들만 따지면 10명 중 8명꼴(61명, 77.2%)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선고유예나 벌금형에 그친 이도 있었다. 정연씨처럼 아이를 두 번 버린 엄마도, 화장실 변기 위에 아이를 두고 온 부부도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 부모가 청소년이라 가정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 경우도 2명 있었다.
최유미(가명·27)씨는 79명 중 가장 무거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4년 12월 아이를 낳고 쓰레기봉투에 넣어 공터에 버렸다. 아이는 동사했다. 최씨는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이다.
검찰은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최씨를 기소했다. 형량이 징역 5년 이상이다. 법원은 영아유기치사로 죄명을 변경했다. 영아유기는 최고 형량이 징역 2년 또는 벌금 300만원이다. 절도죄(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형량이 적다.
아기를 버린 부모는 경찰에 잡혀도 재판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2010∼2014년 영아유기 사범 344명 중 84명(24.4%)만이 기소됐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영아유기 사건 대부분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데 검찰·법원 단계에서 여러 이유를 참작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를 찾는데도 소극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2016년 영아유기 사범 검거 건수는 266건으로 발생 건수(717건)의 37.1%였다.
김정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아유기죄는 형량 자체가 워낙 낮지만 그렇다고 마냥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무리가 있다”며 “영아유기를 저지른 이들 중 사회적으로 제도가 잘 구비돼 있었으면 아이를 키웠을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가장 슬픈 범죄] ‘생명’을 버린 죄… 너무 ‘관대한’ 法
입력 2017-04-20 17:46 수정 2017-04-21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