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정신과 영혼의 맥놀이

입력 2017-04-20 17:55

맥놀이, 진동수가 약간 다른 두 개의 소리가 간섭을 일으켜 소리가 주기적으로 세어졌다 약해졌다 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범종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신라 에밀레종, 그 신비한 소리의 비밀도 맥놀이 현상에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에밀레종의 맥놀이 주기가 3초인데 사람의 호흡 주기와 같아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맥놀이 현상을 사회적 상황으로 번역하면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남에 대한 진지하고 따듯한 관심을 통해서 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정신이 맥놀이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진 사람 또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사람이 살 만한 사회가 못된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셔서 못된 사회를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곳이라고 책망하셨다. 누가복음 7장 31∼32절이다. “그러니, 이 세대 사람을 무엇에 비길까?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그들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서로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통하게 울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하는 것과 같다.”

최근의 언론 보도에서 복받쳐 오르는 격한 감정을 느낀 것이 있다. 정지용이 쓴 시에 김희갑이 곡을 붙인 노래 ‘향수’를 독일 소녀들이 부른 영상이다. 네포묵소녀합창단의 지휘를 맡고 있는 한국 교민이 4·16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소녀들에게 들려주었고, 그 3주기를 기념하면서 향수를 부른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조선지광(朝鮮之光)’ 65호에 발표된 시 향수는 한국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독일 소녀들이 향토색 짙은 감성적 단어들을 깊이 이해했을 리 없었을 텐데, 이 노래를 부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이 노랫말이 일제강점기에 쓰였다는 것과 그에 연관된 삶의 자리도 얘기해 주었을까. 삶이 피어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자기 또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노래 부르는, 두 줄로 선 23명 소녀들 뒤의 붉은 커튼에는 수많은 노란 풍선에 매달려 떠오르는 노란 종이배가 보인다. 소녀들 가슴 왼편에는 노란 리본이, 오른쪽 손목에는 노란 팔찌가 슬프다. 한참 먼 지구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녀들의 노래에서 가슴 저린 아픔이 긴 맥놀이로 전해진다.

사람다움의 본질은 남에 대한 공감 능력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를 단적으로 말씀하셨다. 오직 하나인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명제 말이다. 정신과 영혼의 맥놀이가 사랑의 심장일 테다. 타인과 타자에 대한 공감 없이 지구 생태계가 지속될 리 없다. 남의 아픔과 슬픔에 대한 공감의 눈물,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특별한 일들에 대한 감격의 눈물 없이 결코 삶이 행복할 수 없다. 진하고 고운 공감의 파동이 있는 사회가 사람 살 만한 곳이다. 거기에 공동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대선 후보들의 여러 공약이나 주장을 보면서 공감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어떨까. 파면된 대통령에게 여러 문제가 많았지만 따지고 보면 진실하고 따뜻한 공감 능력이 결핍된 게 원인이었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