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악어, 입 다물다

입력 2017-04-20 17:57

공사 중인 길을 운전하고 가는데 투다닥! 요란한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앞범퍼 밑 부분 오른쪽이 쩍 벌어져 있다. 마치 후크 선장이 다리로 악버티고 있는 악어 입 같다. 카센터로 가자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우 이거, 정비소 가야 해요. 그러고는 차를 빙 돌며 여기도 긁히고 여기도 파이고, 지적을 해댄다. 전부 손봐야 한다, 보험처리하면 더 손해니 그냥 해라, 몇 십만 원이면 되겠다. 나는 모기소리로 자세한 견적 내보세요, 답하고는 차를 맡겨놓고 왔다.

그리고 다음날 택시기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어우 손님! 기사가 침을 튀겼다. 범퍼 밑은 폼으로 달아놓은 거다. 없어도 차 굴러가는 데는 아무 지장 없다. 긁히고 파인 건 뒀다가 누가 네 차 받으면 그 참에 왕창 손봐라. 왜 생돈들이냐. 이 차 운전한 7년 동안 한 번도 안 받혔는데요, 모기소리로 답했더니, 그럼 받힐 때도 됐네!

나는 차를 그냥 가져와서 그냥 끌고 다녔다. 점점 벌어지는 악어 입은 슬쩍 곁눈질한 뒤 눈을 질끈 감은 채. 그러다 도저히 더 못 버티겠다고 싶은 날, 순간접착제와 강력본드와 물휴지, 마른 휴지, 칼과 장갑 등으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차 앞에 포복했다. 그리고 악어 입에 손을 댄 순간, 어라? 고무네?(철판이나 플라스틱일 줄 알았다) 어라, 홈이 있네? 어라, 여기는 고리가 있네? 어라, 끼워지네? 고리를 홈에 차례차례 끼우자, 짠! 악어가 입을 꾹 다물게 됐다. 물휴지만 시커매졌을 뿐 나머지 전투장비는 고이 되돌아갔다.

카센터 사장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안 그랬으면 내가 차 앞에 엎드릴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건 안 돼, 난 못해, 사람 불러야 돼! 하는 울타리가 하나 허물어졌으니 오히려 고맙다. 내친김에 파인 데는 몰라도 긁힌 데는 내가 손질할까 한다. 자동차 스크래치 지우는 약이 있다는 것도 마트 드나든 지 수십 년 만에 처음 알았다. 와이퍼도 영 시원찮은데 이것도 내가 갈 수 있을까? 찾아볼 참이다. 제주살이가 여러 모로 내게 신세계를 선사한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