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면서 “저출산·고령사회 등 중장기 과제에 사명감을 가져 달라”고 강조했다. 유 부총리뿐만이 아니다. 국무회의, 경제관계장관회의 등 정부의 주요 회의에서 저출산·고령화는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다. 하지만 성과는 없다. 지난해 기준 출산율은 1.17명으로 전년보다 더 떨어졌다.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주자들도 다양한 저출산 해법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 후보들은 하나같이 아동수당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은 헛다리를 짚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조세정책만 봐도 애를 낳아봤자 세금은 그대로다. 저소득층일수록 더 그렇다. 애를 낳지 않도록 몰아가는 셈이다.
국민일보가 1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 근로임금과세(Taxing Wages)’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미혼 가구와 자녀가 2명인 외벌이 가구의 세금 수준은 별 차이가 없었다. 월 소득이 평균 임금의 3분의 2 수준인 245만원 이하인 경우를 놓고 비교한 것이다.
근로자의 실질조세부담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조세격차(Tax Wedge)’는 미혼 가구 19.0%, 외벌이 가구 17.0%였다. 100만원을 벌어 미혼 가구는 19만원, 자녀 2명인 외벌이 가구는 17만원을 세금으로 낸다는 뜻이다.
두 집단의 조세부담 차이는 2.0% 포인트다. 이는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0.0% 포인트) 칠레(0.9% 포인트) 터키(1.6% 포인트)에 이어 네 번째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멕시코(2014년 기준 출산율 2.20명)와 터키(2.17명)는 출산율이 높은 국가다. 칠레도 2013년 기준으로 1.79명에 이른다. 세금 혜택을 주면서 출산을 장려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반면 저출산으로 골머리를 앓는 유럽 국가들은 자녀가 있는 저소득 가구에 상당한 세제 혜택을 준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월 소득이 평균 임금의 3분이 2인 미혼 가구(조세격차 45.3%)보다 자녀 2명인 외벌이 가구(31.0%)가 세금을 훨씬 적게 낸다. 그리스 폴란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유럽 대부분 국가는 아이를 낳으면 세금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아예 세금 부담이 ‘마이너스’인 국가도 있다. 캐나다에서 미혼 가구의 조세격차는 26.5%다. 반면 자녀 2명인 외벌이 가구는 -14.9%로 뚝 떨어진다. 다른 사람이 낸 세금을 되레 받아가는 것이다. 아일랜드 뉴질랜드 호주도 이런 방식을 쓴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0%에 가까워 더 깎아줄 세금이 없다는 게 맹점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마이너스 세액공제 등으로 자녀가 있는 저소득층에게 많은 세금 혜택을 주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선 주자들이 말하는 아동수당은 저소득층일수록 효과가 적다”며 “마이너스 세액공제를 도입하면 저소득층일수록 혜택이 커지는 효과도 있어 소득분배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단독] 아기 낳아도 세금은 ‘無혜택’
입력 2017-04-2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