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의 손발 묶어 놓으면 일자리는 누가 만드나

입력 2017-04-19 18:28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9일 내놓은 노동 공약은 구체성이 결여되고 재원 마련 계획이 없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 문 후보는 50, 60대를 겨냥해 ‘희망퇴직 남용 방지법’을 제정해 ‘자발적인 희망퇴직 실시’를 법으로 명시하겠다고 했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받는 것은 부도 위기에 몰리는 등 경영상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어 퇴출이 힘든 만큼 신규 취업에 제한을 받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의 손발을 묶어놓는다면 다같이 망하자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문 후보는 50세 이상 연봉 5000만원 미만 근로자들이 이직할 때 감소한 임금의 30∼50%를 최장 3년간 지급해주는 보험제도를 도입하겠다고도 했다. 재원은 고용보험 부과 방식과 정부 재정의 매칭 방식을 결합해 마련한다고 했다. 집권 후 10조원 이상의 일자리 추경이나 5년간 20조5000억원이 소요되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는 것도 나랏돈으로 하겠다는 것인데 나라 곳간이 화수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안 후보는 “비정규직을 대폭 줄이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높여 좋은 일자리로 만들겠다”고 했다.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문제는 대책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안 후보는 대기업의 60% 수준인 중소기업 청년 임금을 80%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5년 한시적으로 매달 50만원씩 2년간 12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한 바 있다. 또 구직 청년에게 6개월간 매달 30만원씩, 문 후보는 9개월간 매달 30만원씩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해 기준 빈곤층이 전체 국민의 16%에 달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 수요는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재정 집행에도 순서가 있어야 한다. 무슨 수로 중소기업에 취업해 월급받는 청년층까지 지원한다는 말인가. 정책의 우선순위나 불요불급성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퍼주다 보면 지속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남미 국가나 그리스꼴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나라만큼 복지천국, 노동천국이 없다. 누가 더 나은 국가를 건설할 것인지 청사진을 내놓는 게 아니라 당장 눈앞의 표만 끌어모으겠다는 돈 퍼주기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이나 총선 때 공약보다 금액을 올리고, 강도를 높였다. 경쟁 후보가 공약을 내놓으면 기간을 늘리거나 금액을 높이는 식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공약 경쟁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양상이다. 대선 기간이 짧다보니 준비가 부족한 탓인지 상대방 공약을 베끼는 경우도 많아 차별성이 떨어진다. 역대 정권마다 선심성 공약이 쏟아졌지만 상당수가 공약(空約)에 그쳤다. 유권자들은 달콤한 공약에 속지 않을 정도로 현명해졌다.